[이런생각]평균의 바다, 사라진 갈매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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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평균의 바다, 사라진 갈매기를 찾아서
  • 경상일보
  • 승인 2026.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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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훈화 서양화가

짙은 남색의 겨울 바다 위로 파란 하늘이 길게 펼쳐져 있다. 차가운 공기에 아무도 없을 것 같던 해변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서로를 감싸 안은 연인들. 엄마의 손을 벗어난 아이들. 그들의 해맑은 소리가 내 옆을 스쳐 간다. 등대 근처에 낚시꾼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하얀 갈매기들은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먹이를 찾는다. 저 멀리 수평선에 멈춰 있는 듯 보였던 커다란 선박이 어느새 사라졌다.

이 모든 풍경을 압축하면 어떤 이미지로 남을까? 일본의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의 <바다 연작(Seascapes)>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1980년대부터 전 세계 바다의 풍경을 촬영해왔다. 조리개를 장시간 열어두는 ‘장노출’ 기법을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을 한 장면에 응축했다. 그 결과는 의외였다. 필름 위에는 개별적인 움직임 대신, 모든 것이 하나로 수렴된 흑백의 수평선만 남았다.

이 사진을 보면, 지금의 생성형 AI가 세상을 읽어내는 방식과 닮았다. 수많은 지표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확률적이고 보편적인 문장을 만들어 내는 방식. 그 방식은 긴 시간의 노출이 풍경을 평균화하는 과정과 겹쳐 보인다. 물론 기술이 주는 효율성과 편리함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 흐름이 계속될수록 생각과 표현이 하나의 방향으로 획일화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하나의 평균적인 문장으로 수렴될 때, 세계가 스기모토의 사진들처럼 비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서늘한 의심과 함께.

이 평균의 바다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보편적인 방향으로 정리되는 시대일수록, 평균에서 비켜난 삶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장 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그녀를 지키다>에서 그 단초를 발견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애초부터 ‘평균’에서 비켜난 존재들이다.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키를 가진 그래서 ‘남들의 시선과 부딪힐 염려가 없는’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남성 권위주의 시대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었던 오르니시 가문의 딸 비올라. 그들의 삶은 매끄럽지 않았다. 어긋난 선택, 낯선 상상이 그들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그 차이는 때로는 불화의 씨앗이 되었고, 동시에 삶을 끝까지 지탱하는 힘이었다. 결국, 평균에서 벗어난 자리는 각자 자기 삶의 모양을 지켜내는 자리가 되었다.

지금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나’라는 개별적 존재의 떨림이 장노출 사진 속에 지나갔을 갈매기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때로는 서툴고 낯선 선택이야말로 평균의 바다에서 나를 증명할 가장 선명한 흔적일 수 있다. 그 사소한 어긋남이 빚어내는 고유함,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남은 마지막 여백일지도 모른다.

장훈화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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