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25)]떼까마귀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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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25)]떼까마귀의 귀환
  • 이재명 기자
  • 승인 2019.11.0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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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태화강 한복판과 대숲 한 가운데 하얗게 내려 앉아 있던 백로가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에 까만 떼까마귀가 하늘을 뒤덮으며 몰려왔다. 울산학춤보존회 김성수 명예회장이 지난 10년 동안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를 분석한 결과 떼까마귀는 해마다 10월13~17일 사이에 날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월에 접어들면 그 수는 10만여 마리로 늘어난다.

하얀 새가 까만 새로 불과 며칠 사이에 바뀌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들의 보금자리가 바로 이웃에 있다는 것도 신비롭다. 두 새는 불과 몇미터 거리에 보금자리를 갖고 있지만 한쪽이 떠나면 또 한쪽은 울산으로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한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상사화처럼.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까마귀 검다하고’는 조선의 개국공신 이직(1362~1431)이 지은 시조로 알려져 있다. 고려의 운명을 직감한 이직은 새로운 나라를 꿈꿨다. 하얀 깃털을 가졌으나 속은 오히려 더 검은 고려말 권문세족들의 행태를 꾸짖는 시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가 흰 빛을 샘낼까 염려스럽구나/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 시조는 작자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 정몽주의 어머니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말의 이전투구 상황을 그대로 표현해 놓았다. 까마귀는 조선을 개국하려는 이성계 일파를 의미한다.

떼까마귀와 백로는 고려말·조선초의 시대상황 때문에 함께 도매금으로 치부됐지만 사실은 한 고장에서 계절 따라 서로 자리를 비켜주는 아름다운 새들이다. 여름에는 백로가 강을 차지하고 겨울에는 까마귀가 논밭을 차지하는 양보의 미덕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울산이다. 많은 가객들이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고 읊었지만 울산에서는 백로와 까마귀가 한데 모이려야 모일 수 없다.

입동이 며칠 남지 않았다. 명나라 때 발간된 <본초강목>에 까마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새는 알에서 부화한지 60일간은 어미가 먹여 살리지만 어미가 늙고 병들었을 때는 직접 먹이를 물어다 봉양한다고 한다. 여기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운 계절이 돌아왔다. 떼까마귀의 귀환을 보니 늙은 노모가 생각난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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