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음식디미방]손수 끓인 고디탕,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귀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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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음식디미방]손수 끓인 고디탕,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귀한 음식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6.29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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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의 고디탕은 고디에 부추를 듬뿍 넣어 한소끔 끓여낸 음식이다.

옛 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울산의 맛’을 기록하고자 한다. 예전과 똑같은 재료로 옛 맛을 되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달라진 자연환경과 새로운 규제가 걸림돌이다. 더이상 구할 수 없는 재료는 최선의 대안으로 진행한다. 조선 최초의 한글요리백과 ‘음식디미방’처럼 친절한 조리법을 곁들여 추억의 맛, 그리운 그 맛을 재현한다.

▲ 고디탕과 함께 먹으면 좋은 죽순전
▲ 고디탕과 함께 먹으면 좋은 죽순전

‘다슬기’는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여름 한 철 음식재료였다. 하천과 호수 등 물이 깊고 물살이 센 곳의 바위 틈에도 잘 붙어 살았다. 흐르는 냇물에서 다슬기를 주워오면, 이를 가지고 저녁상에 올릴 국이나 찌개를 끓여먹는 일이 흔했다. 울산도 마찬가지였다.

흔하게 잡히다보니 다슬기는 이름이 많았다. 충청도에선 다슬기를 다슬기로 부르지않고 주로 올갱이라고 했다. 전라도에선 대사리, 강원도에선 꼴팽이라고도 했다한다.

▲ 고디
▲ 고디

울산에서는 ‘고디’라고 불렀다. 좀더 살집이 있고 둥그스름한 논고둥과 구별됐으며, 옅은 강이나 시냇물 속 돌무더기에서 주로 잡혔다. 울산사람들은 이를 잡아 한여름 보양식으로 즐겼다. 먹을 것이 귀해서 푸성귀만 먹어야 하던 시절이라 작디 작은 고디를 모아 한솥 끓인 국이나 탕으로 부족한 영양을 채웠던 것이다.

울산의 고디탕은 고디에 부추를 듬뿍 넣어 한소끔 끓여낸 음식이다. ‘국’이라고 하기엔 조금더 껄쭉하고, ‘찜’이라고 하기엔 점도가 약했다. 국과 찜의 중간 단계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 음식재료 사진들 - 대파, 숙주, 양파, 생고사리
▲ 음식재료 사진들 - 대파, 숙주, 양파, 생고사리

고디탕을 끓이기에 앞서 우선 고디 표면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민물에 사는 고디는 속에서 토해내는 해캄이 많지 않다. 대신 표면에 붙은 이끼와 물때, 찌꺼기를 말끔하게 비벼서 헹궈내야 한다. 고디를 비비면 제법 시꺼먼 물이 흘러나온다. 다 삶은 고디는 건져내고, 삶은 물은 깨끗한 헝겊에 한번 걸러낸 뒤 그대로 둔다.

다음은 가장 힘든 작업을 할 차례다. 고디를 손에 쥐고 바늘이나 이쑤시개로 고딧살만 콕 찝어 꺼내야 한다.

이 노동은 생각보다 힘들다. 작업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단순하고 지루한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금새 온몸이 뒤틀리게 마련이다.

▲ 고디탕은 여러가지 거섶부터 끓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 고디탕은 여러가지 거섶부터 끓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옛 고디탕을 재현하기 위해 얼린 냉동 고딧살을 사지않고 일부러 농수산물시장에서 생물 고디를 사 왔는데, 한 바구니 3만원하는 고디를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붙어서 껍질을 다 분리하는데만 2시간이 걸렸다. 고디 입을 막고있던 조그만 딱지도 일일이 제거한다.

▲ 들깻물
▲ 들깻물

번거롭기가 말할 수 없겠지만 이를 게을리하면 먹을 때마다 까끌까끌하게 씹혀나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처럼 고생을 했지만 탕에 사용할 순수 고딧살은 대접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됐다. 혹여 손수 끓인 고디탕을 대접 받는다면, 가족을 위하는 어머니의 정성이 아니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임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고디탕은 야채를 비롯한 여름 푸성귀 등 여러가지 거섶부터 끓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끓이는 물은 보관해 뒀던 고디 다시물을 사용한다. 야채는 대파, 숙주, 양파, 말리지 않은 생고사리를 사용했다. 무엇보다 부추를 많이 넣었다. 야채가 부족할 때는 생표고 등 버섯류를 활용해도 좋다. 수분이 많은 야채를 끓일 때는 생각보다 적은 양의 물을 붓는다.

▲ 고디탕, 죽순전으로 차려진 한 상.
▲ 고디탕, 죽순전으로 차려진 한 상.

야채가 끓어오르면 들깻가루와 찹쌀가루를 3대1 비율로 섞은 뒤 물에 개어뒀던 것을 붓는다. 하얗게 포말이 일면서 거품이 나는 듯 할 때 다진 마늘과 소금, 간장(유지렁)만 넣어서 간을 맞춘다. 고디 다시물 자체의 구수한 맛과 들깻가루 특유의 맛을 그대로 살리려면 되도록 간을 적게 하는 것이 좋다.

고디는 가장 마지막에 넣는다. 푸르스름한 고디를 넣고 나무주걱으로 살며시 저어가며 한소끔 더 끓인다. 찹쌀물이 들어갔기 때문에 끓으면 끓을수록 국물의 점성은 더 강해진다. 들깨향을 좋아하는 식성이라면 껍질째 갈아놓은 생들깻가루를 사용하면 된다.

▲ 부추
▲ 부추

‘고디탕’은 ‘매집’으로도 불렸다. 혹자는 ‘맨집’으로 기억하기도 했다. 이유는 소금이나 간장으로만 간단하게 간을 맞췄을 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때 ‘맨’은 ‘다른 것이 없는’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해석했다. 맨주먹, 맨발과 같은 용례로 사용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맨집은 양념을 최소화 한 음식이라는 말이다. 매집 역시 각 지역마다 볼 수 있는 음식이었는데, 다만 각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를 사용했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은 같지만 지방마다 재료가 달라 다른 음식이 됐다. 각종 재료에 밀가루, 찹쌀풀, 찹쌀가루, 들깻가루 등을 넣어 걸쭉하게 끓이는데, 민물에서는 고디를 주로 사용했지만 바다로 갈수록 따개비, 멍게, 미더덕 등도 활용됐다.

▲ 이다혜 전문가·울산음식문화연구원장
▲ 이다혜 전문가·울산음식문화연구원장

한편 이맘때는 고디탕과 함께 대숲에서 나는 죽순 반찬도 밥상에 올랐다. 이번 달에는 고디탕과 함께 계절에 맞는 죽순 재료로 죽순전을 만들어봤다. 죽순을 잘게 다지고, 홍고추와 청고추 역시 다진 뒤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절반씩 섞어 물로 전을 부쳤다. 구수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고디탕에 아삭아삭 씹히는 죽순전을 한상에 곁들인다. 한여름을 이기는 보양음식으로 과하지 않으면서 딱 알맞다.

이다혜 전문가·울산음식문화연구원장

참고=<울산향토음식>(2002), <울산의 음식>(2018), 울산역사문화대전
조리=김영순 울산음식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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