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살에 6·25 참전했다 전사
2011년 유해 발견됐지만
유전자 분석 기술 미비탓
8년 기다림 끝에 신원 확인
유가족 DNA검사기법 적용
20대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가족을 뒤로한 채 6·25 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호국영웅이 68년 만에 고향 울산으로 돌아왔다. 꽃다운 나이에 홀로 남겨져 4남매를 키운 부인과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유복자는 남편과 아버지의 뒤늦은 귀환을 반기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2일 울산 울주군 상북면 고 김홍조 하사의 집안 재실에서 136번째 호국영웅 귀환행사를 열었다.
68년만의 귀환행사에는 유가족과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이선호 울주군수, 간정태 울주군의장,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김 하사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및 신원확인 경과 설명, 신원확인통지서 전달, 위로패·유품 등 담긴 호국의얼 함 전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1923년 울주군에서 태어난 김 하사는 27살의 나이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농사를 짓고 부둣가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던 김 하사는 세 자녀를 두고 있었고, 아내의 뱃속에는 넷째 자녀가 자라고 있었다.
제대 후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한 뒤 집을 나섰던 김 하사는 국군 제7사단 8연대 소속으로 1951년 2~3월께 UN군의 2차 반격작전 기간 벌어진 평창 속사리-하진부리 부근 전투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1년 2월11일, 당시 중공군이 양평과 원주 일대에 공격을 가하자 미 8군사령관은 적을 포위·섬멸하기 위한 격멸작전을 수립했다. 김 하사가 소속된 제7사단은 미 10군단의 공격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하사의 유족은 유해나 유품도 없이 전사 통보서 한 장을 통해 사망 소식을 접했다. 유족들은 기억을 더듬어 그린 초상화와 전쟁터에서 돌아오면 입히려고 지어 둔 바지저고리를 보며 거의 70년 동안 그리움을 달래 왔다.
김 하사의 유해는 지난 2011년 5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에서 미군 별문양 단추 1점 및 고무줄 1점의 유품과 함께 발견됐다. 그러나 김 하사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다시 8년이 더 걸렸다.
국방부는 2009년 김 하사의 딸 김외숙씨와 친조카 김정득·김정화씨를 통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지만 당시 유전자 분석 기술로는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분석기술이 정교해지면서 유가족을 찾는 작업이 다시 시작됐고 마침내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김 하사인 것을 확인했다.
올해 9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김외숙씨의 유전자 시료를 다시 채취했고, 지난달 대립유전자 확률 99.999% 이상으로 부녀 관계라는 결과를 얻었다.
김 하사의 신원 확인은 군 당국이 2000년 4월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36번째며, 유가족 DNA 검사기법을 적용한 두 번째 사례다.
고 김홍조 하사의 막내딸 김외숙(여·69)씨는 “뼈를 많이 찾았다고 한번 소식이 왔었다. 그래서 ‘저 속에 아버지는 없을까’ 늘 생각하고 있었다”며 “유전자 결과가 아버지와 일치한다고 통보가 왔을 때 너무 기뻐 잠도 못잘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없는 유년 시절은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다”며 “오늘 이 자리가 마련돼 너무 감사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한편 울산출신 고 김홍조 하사의 유해는 국방부·유가족 협의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