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52)]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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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52)]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1.10.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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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십여 년 전 천곡사지 칠층석탑을 처음 보던 날, 앞서 가던 돌바라기 회원이 망설임 없이 한마디 했다. ‘어머, 빼빼마르고 못생겼다!’ 그리고 나를 힐끗 돌아보며 묘한 웃음을 날렸다. 오늘은 훌쩍 솟은 탑을 멀찍이서 바라본다. 마르고 못생겼다고 타박할 사람은 없지만 다가서기 전에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절터를 빙 둘러 싼 단풍나무들은 가을빛이 엷다. 둥실한 뭉게구름 한 덩이를 머리에 인 탑도 나들이를 나온 듯 자유롭다. 거칠게 다듬은 낮은 단층 기단 위에 칠층의 탑신을 올렸다. 보물 제309호로 고려 시대에 건립되었다. 정면에서 보면 살짝 기울어져 있어 엉성하기까지 한 탑을 향해 그날처럼 주춤주춤 다가선다. 둔중한 지붕돌 아랫면에 활짝 피어난 연꽃잎들이 어서 오라고 슬며시 잡아끈다. 한 면에 4개씩 16개의 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층마다 길쭉한 연꽃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수수하다.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조각이다. 고려중엽, 지배층들은 섬세하고 화려한 불화를 사찰에 바쳤다. 불화가 귀족 불교의 사치품이었다면 석탑은 소박한 민중들의 기원을 담았기에 빼어난 미감은 배제하지 않았을까.

▲ 천곡사지 칠층석탑
▲ 천곡사지 칠층석탑

천곡리는 이름 그대로 샘골이다. 물 맑은 샘골은 정읍사가 탄생한 본고장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 탑을 찾아온, 조상 대대로 정읍에 뿌리 내리고 살아온 남자가 일러준다. 백제가요 정읍사는 가장 오래된 가사이다. 행상을 떠난 지아비가 오랜 세월 돌아오지 않자 애가 타고 걱정되는 마음에 망부석에 올라 지어 불렀다는 노래다. 탑이 있는 곳도 망제봉 기슭이다.

국어시간에 정읍사를 읽으며 백제 여인을 그려보던 때가 있었다. 정읍사를 가만히 읊조리다 보니 칠층석탑이 기다림에 하염없이 목을 빼고 있는 여인네로 보인다. 하여 몸도 갸웃하다. 칠층석탑은 분명 좁고 가녀린 어깨를 하고 있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강인함이 돋보인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풀잎 향기 밴 야윈 몸에서 풀풀 생기가 돋아난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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