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종중원 지위 인정해달라”, 울산판 ‘딸들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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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종중원 지위 인정해달라”, 울산판 ‘딸들의 반란’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2.03.2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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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대법원은 우리나라 고유의 ‘종중문화’ 관습을 뒤엎고 여자에게도 종중원 자격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 이전엔 공동선조의 후손일지라도 여자는 종원이 될 수 없다는 게 일반의 사고였다.

이 대법원 판결로 적어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더 이상 여자라는 이유로 종중 가입과 문중 재산분배에서 차별받지 않게 됐다. 일명 ‘딸들의 반란’으로 명명된 이 사안에 대해 우리 사회의 잣대가 새로 바뀔 수 있도록 대법원이 법적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1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때마침 ‘울산판 딸들의 반란’이 울산지역에서 시작돼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최근 울산지역 유력 성씨 가문의 여성들이 남성들로만 구성된 종친회를 상대로 여성들도 종중원 지위를 갖게 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다.

이들 여성들은 ‘후손 모두가 종중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알아서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것이 조상선양의 첫 걸음인데, 이러한 일을 두고서 후손 가운데 남녀차별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종중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 후손을 배제하는 건, 친족 절반의 협력을 포기하는 것이고 문중의 번성과 화합이라는 목적을 고의적으로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울산 동구에 사무실을 둔 해당 종친회는 △조상의 유지와 유산의 보존관리 △기금조성 및 수익사업 △육영사업의 운영과 지원 등을 목적으로 50여년 간 운영돼 왔다. 이 종친회의 정관에 따르면 회원자격을 ‘○○○씨 ○○○파 ○○○○세 ○○계의 후손으로서 남자 19세 이상인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기를 든 여성들은 ‘시대 변화에 합당하게 종중의 규약을 개정하여, 여성이 종중원으로서 마땅한 권리와 더불어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등 의무, 종원 상호간의 친목에 이바지 할 자격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이어 ‘규약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부득이 법적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 중 한 여성은 “기회균등·양성평등이 보편화 한 시대에 종친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서울에 사무국을 둔 대종회는 출가한 딸과 며느리까지 여성위원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게됐다. 친손녀·친손자뿐 아니라, 외손녀·외손자까지도 조만간 대종회장학회의 수혜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수십여 파(派)를 아우르는 대종회와 달리 지역의 우리 종친회는 여전히 여성 종중원의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사안을 수면 위에 올려놓고 여러 종중원들이 제대로 논의하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해당 종친회는 오는 4월 열리게 될 2022년도 정기총회에서 이 문제를 1호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종친회 관계자는 “정기총회는 통상 100여 명의 남성 회원들이 참석한다. ‘문중 여성들의 종중지위 인정 여부’는 어떤 식으로든 내부 결론이 날 것이다. 이후 종친회는 그에 따라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10여년 간 전국 각 지역의 종친회를 상대로 한 소송과 판결은 언제나 각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여성 종중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2017년엔 종중의 재산분배를 남녀 종중원에게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물론 권리에 앞서 똑같이 의무를 다해야 가능하다. 2021년에는 종중의 재산을 아들·딸·며느리에게만 주는 건 위법이고, 사위에게도 며느리의 몫만큼 줘야한다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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