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연두(軟豆)의 세상이다. 연두는 완두콩의 빛깔과 같은 연한 초록색을 말한다. 연두의 연(軟) 자는 ‘연약하다’는 뜻의 한자로, 갖 나온 새싹의 빛깔과 같다. 곡우가 낀 다음 주께면 ‘첫물차’라는 우전(雨前)도 맛볼 수 있다. 연두는 영어로 옐로그린(yellow-green)이라고 한다. 옐로그린은 노란빛깔을 머금은 색깔이어서 유난히 햇빛에 반짝거린다.
연두는 붉은 색과 어울린다. 우리나라 여성의 전통의상은 대부분 녹의홍상(綠衣紅裳)이다.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라는 뜻이다. 곱게 차려 입은 젊은 아가씨의 복장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수필가 이양하는 ‘신록 예찬’에서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고 했다.
울산은 벚꽃이 거의 떨어지고 이제 복사꽃만 남았다. 꽃 중에서 가장 고혹적이라는 복사꽃은 이 맘때면 온 산천을 울긋불긋하게 수놓는다. 남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흔들어 놓았으면 남자들이 복사꽃같은 너무 매력적인 여자한테는 접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로 치면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여성’ ‘치명적인 여자’라는 뜻의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고나 할까.
어린 초록가지 끝에 붉은 한 점(嫩綠枝頭紅一點 눈녹지두홍일점)/ 설레는 봄빛은 많다고만 좋은 것은 아닐세(動人春色不須多 동인춘색불수다)
중국 송나라 휘종황제는 어느 날 화공들에게 시 한수를 던져주며 그림을 그리게 했다. 대부분 화공들은 늘어진 가지 끝에 맺힌 붉은 꽃망울 하나씩을 그렸다. 그러나 모두 입선하지 못했다. 정작 일등으로 입선한 작품은 도화지 어디에도 붉은 색을 쓰지 않았다. 다만 버드나무 그림자 은은한 곳에 그림같은 정자가 있고, 그 정자 난간에 한 소녀가 수줍은 듯 서 있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었다. 당시 여성을 더러 ‘홍(紅)’으로 표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홍일점(紅一點)은 이렇게 유래됐다. 이 이야기는 진선(陳善)의 <문슬신어>에 나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계절이다. 온 산천에는 연두색이 짙어가고 도화는 만발했다. 때마침 코로나까지 줄고 있다니 봄나들이 하기에 딱 제격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