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48)]곡우(穀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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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48)]곡우(穀雨)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2.04.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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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한 잔 술도 없이/ 곡우 전에 차를 따리라는 박 시인과 헤어지고/ 요 며칠 나는 마포나루 들락거리며 좀이 쑤셨네// 곡우 비는 내리고 밤새 내리고/ 새벽잠 깨어 비워두고 온 안동 집 생각하네/ 텃밭 첫물 부추는 아직 첫물 그대로 비 맞고 있겠지/ 돌아오는 주말엔 안동 내려가서/ 친구들 불러 놓고 첫물 부추 잘라다가 전이라도 부쳐/ 막걸리나 한 잔 할까 생각하네…(후략)

-‘곡우’ 일부(안상학)



곡우(穀雨)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하는 날’로 정의돼 있다. 穀자를 파자해보면 禾(벼)자와 殼(껍질)자가 결합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곡우의 가장 중요한 일이 볍씨를 담그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속담에 ‘곡우에는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고 했다. 내일이 바로 곡우다.

조상들은 예로부터 볍씨를 매우 소중하게 다뤘다. 볍씨를 담근 항아리에는 금줄을 쳐 고사를 지냈고, 볍씨를 담아 두었던 가마니는 잡귀를 막기 위해 솔가지로 덮어 두었다. 볍씨는 울산을 비롯한 남부지방에서는 ‘씻나락’이라고 한다. 씨앗이 되는 나락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속담은 왜 생겼을까.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옛적에 가난한 후손들이 제사상을 차렸는데 조상 귀신이 내려와 보니 제사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귀신은 고픈 배를 움켜쥐고 광에 들어가 자식들이 감춰둔 씻나락을 까먹었다고 한다.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그렇지 내년 농사에 쓸 씻나락을 먹었다니.

▲ 보성차밭
▲ 보성차밭

하동이나 보성의 녹차밭에는 요즘 곡우를 전후로 차 마니아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곡우 5일 전인 이른 봄에 딴 찻잎을 덖어서 만든 우전(雨前)은 ‘첫물차’라고도 한다. 곡우차(穀雨茶)는 곡우날인 20일 잎을 따 만든 차를 말한다. 차(茶)는 영어로 티(tea)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라고 읽지만 중국 남부 해안과 대만에서는 ‘테(te)’라고 발음한다. 차가 유럽 등지로 널리 퍼져나가면서 테가 티(tea)로 굳어진 것이다.

정약용은 둘째 가라면 섭섭할 만큼 차를 좋아했다. 그의 호는 원래 ‘여유당(與猶堂)’인데 사람들은 ‘다산(茶山)’이란 호에 더 익숙하다. 다산은 그가 유배된 전남 강진 도암면에 있는 만덕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다산은 다성(茶聖) 초의선사와 교류하면서 차의 진면목에 푹 빠져들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필자의 텃밭에도 첫물 부추가 제법 자랐다. 비내리는 곡우 날 오후, 친구들 불러 놓고 부추전이라도 한장 구워볼까나.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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