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50)]보리밭 사잇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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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50)]보리밭 사잇길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2.05.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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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세상이 온통 푸른 색이다. 그 중에서도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는 마치 망망대해의 파도와도 같다. 제19회 고창청보리밭축제가 지난달 30일 시작돼 오는 15일까지 공음면 학원농장 일원에서 열린다. 청보리밭축제에는 ‘보리밭 사잇길 걷기’를 포함해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전북 김제에서는 ‘지평선 추억의 보리밭 축제’가 4일부터 8일까지 개최된다. 진봉면 망해사 인근 1400여㏊의 평야가 파랗게 물들었다.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의 가곡 ‘보리밭’은 전쟁 중이었던 1952년 만들어졌다. 같은 이북 출신인 윤용하와 박화목은 당시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 곡을 구상했다. 둘은 ‘후세에 남을 가곡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그 날 박화목은 고향의 보리밭 사이를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는 꿈을 꾸었다고 후일 술회했다. 이 노래는 1970년대 음악 교과서에 실리면서 인기를 더 했다. 박화목은 원래 이 시에 ‘옛 생각’이라고 제목을 붙여 주었는데 윤용하가 ‘보리밭’으로 고쳤다고 했다.
 

꿈 다져 펼쳐 앉은 구릉 지대/ 추억 밟으며 이랑 넘나들며/ 여린 바람에도 도미노로 물결 지는/ 그 세월 너머 유년이 달려온다// 알알이 영근 자루마다 날 세운 수염/ 자식 위한 방패막이로 섰고~ ‘청 보리밭에 서다’ 일부 (임종순)

보리는 오곡(五穀: 쌀·보리·조·콩·기장 ) 중 하나로 꼽힌다. 흔히 사리분별을 잘 못하는 사람을 ‘숙맥’이라고 표현하는데, 콩(菽)인지 보리(麥)인지 분간을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중국 문헌 <좌전(左傳)>에는 ‘숙맥불변(菽麥不辨)’으로 나온다. 춘추전국 시대 진(晉) 나라에 도공(悼公)이라는 군주가 있었는데 그의 형은 너무 미련해 아무 일도 맡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콩과 보리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라고 놀렸다. 그래도 형은 근심 걱정 없이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숙맥이 상팔자’라는 우리 속담도 생겨났다.

5월 보리밭은 그리움이다. 아스라이 잊혀져갔던 일들이 출렁이는 보리밭에 넘실거린다. 전국 방방곡곡의 보리밭에 ‘뉘 부르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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