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화첩 울산의 풍경과 삶]물길 따라…꽃길 따라…걷는 생명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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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화첩 울산의 풍경과 삶]물길 따라…꽃길 따라…걷는 생명의 시간들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05.16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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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강국가정원(111x74㎝, 한지에 수묵담채, 2022)
태화강국가정원은 강물과 꽃밭과 대나무숲이 어우러진 풍광을 연출한다. 흘러가고 흘러오는 물과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과 오래되었지만 병들지 않은 대숲은 생명의 시간을 보여준다. 그 시간은 소멸과 태어남의 순환으로 새롭고 풋풋한 길을 만든다. 그 길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우리는 길을 따라 태화강국가정원을 거닌다.

도시의 길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자동차가 활보한다. 길의 흐름은 자주 막히고 끊어지고를 반복한다. 이제 도시의 도로는 걷는 길이 아니라 장소 이동을 위해 빨리 달려야 하는 길로 변했다. 사람이 걷는 인도 또한 건물과 상품으로 눈은 혼란스럽고, 자동차가 뿜어대는 소음으로 귀는 먹먹하다. 도시를 걷기 위해서는 몸의 감각이 총동원된다. 도시의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한가로움은 줄어들고 위험과 긴장의 수치는 올라간다. 이와는 달리 강의 물길은 흐름으로부터 나와 흐름으로 나아간다. 흐르는 것은 걷는 것이다. 태화강은 도심 속 정원의 물길이다. 그 길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면서 휴식과 명상을 권유한다. 강가를 걷는 즐거움은 강의 물길처럼 가슴 속의 노래가 흐르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 있다.

울산은 태화강국가정원의 꽃으로 웃는다. 꽃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모두가 꽃으로 웃는다. 봄날 태화루 아래 무궁화 정원에서 시작된 웃음은 작약원에 이르면, 환호와 탄성으로 바뀐다. 빨강 하양 노랑 분홍 등 가지가지 작약을 보면서 우리는 꽃밭을 거닌다. 화려하고 눈부신 꽃들 때문에 눈앞이 순간순간 어두워지고 밝아지기를 반복한다. 꽃향기에 취해 멀미가 난다. 시민정원과 작가들이 꾸민 정원을 구경하면서 꽃 멀미를 가라앉힌다. 모네의 정원 곁 초화원은 새빨간 꽃양귀비와 하얀 안개초, 노란 금영화, 보라색 꽃들의 공연장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안무하듯 꽃물결이 일렁인다. 꽃밭 이랑은 아무리 봐도 싫지 않은 갈래갈래 꽃길이다. 사람들은 꽃을 보고 꽃길을 걸으면서 웃고 즐거워한다. 그렇다. 꽃길은 꽃들이 물을 담고 가는, 불의 향기다. 꽃길은 불을 안고 가는, 물의 걸음이다. 그러기에 꽃길은 이 땅을 웃게 하고 아름답게 한다. 꽃길은 꽃들이 물처럼 흐르는 불이다. 꽃길은 불처럼 타오르는, 물의 향기다. 그러기에 꽃길은 우리 사는 땅에 피를 돌게 하고 우리를 사는 듯이 살게 한다.

태화강 십리대숲은 강변을 따라 형성된 대나무 군락지다. 숲은 인간과 가까이 있어야 유익하다. 인간과 함께하면서 사람의 손이 가야 값지다. 그래야 예스럽고 오래된 숲이 새로운 숲으로 살아난다. 십리대숲은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만든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도시 가운데 있는 십리대숲은 이런 점에서 최고의 명소다. 십리대숲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토박이 주인이다. 주인으로서 십리대숲은 태화강과 함께 동물과 사람들을 위해 잔치를 벌인다. 백로와 왜가리와 해오라기, 고니와 두루미와 황새, 기러기와 까마귀 떼를 먹고 자고 놀고 쉬게 한다. 몰려오고 가는 새 떼의 몸짓과 풍경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감각을, 살아 숨 쉬는 생명의 흐름을 느낀다.

십리대숲에서 압권은 대숲 걷기다. 걷기는 자신의 몸으로 경험하는 감각을 열어놓는다. 걷기는 온전히 자신으로 살게 한다. 발바닥에 전해오는 흙길은 부드럽고 발걸음은 가볍다. 대숲은 초록 평화의 세계다. 대숲에서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새소리처럼 맑고 청량하다. 머리 위에서 댓잎이 흔들린다. 대숲도 생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움직인다. 광합성이란 먹이를 장만하기 위해 대나무는 공중에서 걷는다. 해와 달과 별을 향해 걷는다. 눈비를 맞으며 걷는다. 바람과 놀다 강풍에 매 맞으면 걷는다. 걸음에 매듭을 남기며 걷는다. 그렇지만 대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 대나무는 천천히 걷는 장거리 선수다. 대숲에서 걷기는 대나무처럼 마음의 흐름을 따라 걸어야 한다. 그래야 온몸으로 퍼지고 퍼져나가는 생기를 체득한다. 생기(生氣), 이것이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는, 걷기의 즐거움이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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