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속담에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라는 말이 있다. 오는 3일이 바로 부채를 주고받는다는 단오다. 부채는 순수한 우리나라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부’자와 가는 대나무라는 뜻의 ‘채’가 어우러진 말이다. 부채를 뜻하는 한자는 선(扇)이다. ‘깃 우(羽)’가 쓰인 것으로 미뤄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는 깃털 같은 것으로 부채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산 하나가 펼쳐진다/ 깊은 계곡마다 가야금 연주의 맑은 물소리/ 대청마루에 앉아도/ 산허리와 대면한 듯// 산그늘에 누워 있던 바람이/ 제 이름 듣고/ 빠르게 달려왔다// 바람으로 기억하지만/ 청정한 정신으로 다가오느니// 대나무 결 스치는 깊은 소리/ 한지 속삭이는 낮은 속삭임// 우주 하나가 접히고/ 우주 하나가 펼쳐진다 -‘부채’ 전문(신달자)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 외에도 다방면으로 쓰였다. 그 예의 하나가 바로 제갈량의 부채다. 제갈량은 그의 아내가 준 깃털 부채 학우선(鶴羽扇)을 항상 들고 다녔다고 한다. 아내는 부채를 주면서 “큰 일을 도모하려면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며 당황스러운 일을 겪게되면 부채로 얼굴을 가리라고 당부했다. 제갈량은 부채 덕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승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예로부터 부채는 여덟가지 덕(德)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팔덕선(八德扇)이다. 첫째 시원한 바람을 내고, 둘째 모기나 파리를 쫓아 주고, 셋째 곡식이나 음식이 담긴 그릇을 덮고, 넷째 불을 지필 때 바람을 일으켜 불을 붙여주고, 다섯째 땅바닥에 앉을 때 깔고 앉고, 여섯째 길을 다닐 때 햇빛을 가리고, 일곱째 비를 막아주며, 여덟째 머리에 물건을 일 때 똬리 대신 사용되는 것이다. 특히 쥘부채는 펼치면 책이 됐다가 접으면 칼이나 몽둥이가 되며 전쟁 때는 지휘봉으로 변하기도 한다.
부채에는 시(詩), 서(書), 화(畵)가 자유자재로 펼쳐진다. 그 중 ‘開時成半月 揮處發淸風(개시성반월 휘처발청풍)’라는 글귀는 자주 부채에 인용된다. 뜻을 풀어보면 ‘부채를 펼쳐 열면 반달이 되고, 그 반달을 휘두르면 맑은 바람이 일어난다’라는 의미다.
낮기온이 30℃를 훌쩍 넘어선지 오래다. 이번 단오에는 맑은 바람 나오는 쥘부채 하나 마련해보는 것은 어떠한지. 풍류(風流)가 별 것 있나. 바람(風) 부는대로 물(流) 흘러가는대로 사는 게지.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