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가뭄 끝에 마침내 단비가 왔다. 대지에 생기가 감돌고 나무에는 열매가 탱탱해졌다. 이 맘때가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열매가 바로 앵두다. 푸른 잎 속에 붉은 열매가 가득 달린다. 탐스런 앵두는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처녀들이 앵두빛 입술을 하고 봄바람에 치맛자락을 펄럭이면 동네 총각들의 애간장이 녹는다. 예로부터 단순호치(丹脣皓齒)라 하여 미인의 조건으로 붉은 입술과 하얀 이를 들었다. 잘 익은 앵두의 빨간 빛깔은 미인의 입술을 상징한다. 앵두같이 예쁜 입술을 앵순(櫻脣)이라고 부른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석유등잔 사랑방에 동네총각 맥풀렸네/ 올가을 풍년가에 장가 들려 하였건만/ 신부감이 서울로 도망 갔으니/ 복돌이도 삼돌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서울이라 요술쟁이 찾아갈 곳 못 되더라/ 새빨간 그 입술에 웃음파는 에레나야/ 헛고생을 말고서 고향에 가자/ 달래주던 복돌이에 이쁜이는 울었네.

‘앵두나무 처녀’는 군 부대 전화 교환원으로 일하다가 노래자랑에 나간 것을 계기로 가수의 길로 접어든 김정애가 불렀다. ‘앵두나무 처녀’는 1950년대 시골 여성의 굴곡진 삶을 그린, 스토리가 있는 노래다. 노래는 마을의 두 처녀가 서울로 도망을 가면서 동네가 발칵 뒤집히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복돌이와 삼돌이는 이쁜이와 금순이를 찾아 온 서울을 다 헤집고 돌아다녔으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두 사람을 찾는다. 복돌이는 술집 작부가 된 이뿐이를 다독이며 위로했고, 이쁜이는 복돌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앵두가 우리나라에 언제 처음 심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성종 때 간행된 <동문선>에 신라 최치원이 임금이 내려준 앵두에 대해 올리는 감사의 글 ‘사앵도장(謝櫻桃狀)’이 실린 것으로 보아 그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앵두’는 꾀꼬리가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생김새가 복숭아와 비슷하기 때문에 ‘앵도(櫻桃)’라고 불린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처음에는 꾀꼬리 ‘앵(鶯)’ 자에 복숭아나무 도(桃) 자인 앵도(鶯桃)라고 하다 꾀꼬리 앵에서 앵두나무 ‘앵(櫻)’으로 바뀌어 앵도(櫻桃)가 되었다고 한다.
옛날 그 우물가는 없지만, 이쁜이와 금순이는 없지만 6월 하늘 아래 앵두는 빨갛게 익어간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