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숨찬 깔딱고개…정겨운 오솔길…한해 되짚는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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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숨찬 깔딱고개…정겨운 오솔길…한해 되짚는 산행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2.12.29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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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울주군의 삼동면 둔기리와 청량읍 율리, 범서읍 천상리에 걸쳐 있는 문수산의 정상.

1. 초등학교 때 봄소풍을 문수산으로 갔다. 당시 반천초등학교에 다녔던 우리는 문수산에 가려면 먼저 태화강을 건너야 했다. 지금 반천현대아파트 위쪽에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여름 한철 동네 아이들이 소를 끌고 건너던 곳이다. 강을 건너면 계곡 따라 조금 걷다가 왼쪽 편 산을 타고 오른다. 계곡의 왼쪽은 입구부터 갓골, 가는골, 저티골(절골), 오보시골 등이 이어져 있고, 오른쪽은 서당산으로부터 작은골, 큰골 등으로 이어졌다. 계곡의 끝은 충골이라 했다. 충신이 살았다고 해서 충골이라고 했다는데, 1960년대까지는 13가구 정도가 살았던 곳이다. 입구 왼쪽부터 산능선을 타고 계속 가면 문수산으로 이어진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에게는 상당히 힘든 길인데, 당시 시골 아이들에게는 그 정도 걷는 것은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때 갔던 저 길로 문수산을 가고 싶었는데 여태 가지를 못했다. 저 길로 문수산을 갔다는 사람도 드물다. 사람이 찾지 않는 길은 잊혀지게 마련이다. 무엇이든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야 오래 간다. 물론 문수산이야 그동안 부지기수로 갔다. 대부분 율리 쪽에서 올랐고 가끔 천상이나 무거동 우신고등학교나 신복초등학교에서 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게 저 길은 여전히 가고 싶은 길이고 그리운 길이다. 나이 들수록 짙어지는 유년의 기억이어서 그런 것 같다.

▲ 문수산은 해발 600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내려다보면 산자락이 구비구비 펼쳐지고 울산 시내도 한눈에 들어오는 매력이 있다.
▲ 문수산은 해발 600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내려다보면 산자락이 구비구비 펼쳐지고 울산 시내도 한눈에 들어오는 매력이 있다.

2. 문수산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삼동면 둔기리와 청량읍 율리, 범서읍 천상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600m로 높지도 낮지도 않는, 그래서 산 좋아하는 사람이 적당히 오르기 좋은 산이다. 동쪽으로 영축산(340m)과 남쪽으로 남암산(543m)을 이웃하면서 이곳에서 태화강과 회야강의 지류가 발원한다. 문수(文殊)는 문수보살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으로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문수산(文殊山)은 고을 서쪽 25리에 있는데, 망해사와 청송사가 모두 문수산에 있다.’라고 되어 있다. <해동지도> 등 군현지도에도 문수산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영남읍지>에는 ‘정상에는 기이한 대(臺)와 옛 암자가 있다. 눈으로 동남쪽을 보면 마도(馬島)를 볼 수 있다. 날이 가물면 기우(祈雨)한다.’라고 수록하고 있다. 산의 남서쪽에는 신라 때에 세웠다는 문수사가 있다. 남동쪽에는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남아 있고 그 아래에 영축사지가 있다.

문수산은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중심지이다. 산의 남서쪽에 있는 문수사와 남동쪽에 있는 망해사지와 청송사지,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영축사지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에서 문수보살에 대한 신앙은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었다. 이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는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이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중국 산시성(山西省)의 청량산(일명 오대산)이다. 이 청량산에서 수행한 자장이 청량산의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보살 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하여 보살로부터 범어로 된 사구게(四句偈)를 받았다.

문수사는 646년(선덕 여왕 15)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자장 율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신라 원성왕 대(785~798)에 연회 국사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연회는 영축산에 은거하여 항상 <법화경>을 읽으며 수행하였는데, 원성왕이 연회를 국사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자 연회는 그 소식을 듣고 서령(西嶺)으로 도망가다가 문수대성과 변재천녀(辯才天女)를 만난 뒤 생각을 바꾸어 다시 암자로 돌아와 왕의 부름을 받고 국사가 되었다고 한다.

3. 최근들어 해마다 그해의 마지막 산행은 문수산이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했다. 산악회 회원 10여 명과 함께 출발했다. 출발지는 율리 농협, 영축산을 거쳐서 문수산 정상에 올랐다가 문수사를 거쳐서 청송사지 삼층석탑과 청송사지 부도를 보고 내려오는 코스이다. 도착지는 청량초등학교 문수분교이다. 이 코스로 문수산 정상에 가려면 깔딱고개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깔딱고개 앞에서 포기하고 그냥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문수산행의 묘미는 깔딱고개에 있다.

깔딱고개는 숨이 깔딱거릴 정도로 힘들게 오르는 고개라는 뜻이다. 사람이 일평생을 살면서 깔딱고개 한 번 없는 삶은 없다. 그 고개를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 그것에 의해서 그 사람의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깔딱고개는 우리네 삶의 리허설이다. 그러니 우리가 넘고 또 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베풀어준 산은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조금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망해사가 보인다. 신방사(新房寺)라고도 불린 곳인데, 절 이름으로는 고약하다. 깔딱고개 가기 전에 잠시 오른쪽 오르막을 오르면 영축산이 있다. 문수산에 오는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곳인데, 힘들지 않는 곳이니 잠깐 들렀다 가도 좋은 곳이다. 나는 산행에 꼭 필요한 것이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라고 생각한다. 산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오직 정상을 목적으로 하여 앞만 보고 열심히 걷는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여기저기 살피고 느끼면서 가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따지는 현대인들의 잘못된 사고에 비추어도 그렇다.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영축산에서 깔딱고개 쪽을 가다 보면 오르막으로 가는 길과 왼쪽으로 우회해서 가는 길이 나온다. 오르막 길을 주로 다녔기에 이번에는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을 걸었다. 길이 힘들지 않으면서도 정겹다. 감태나무들이 보이고, 큰 바위 아래 몇 사람이 편히 앉아서 목을 축일 수 있는 너른 마당도 있다. 산에는 길이 많으니 늘 가는 길을 가는 것도 좋지만, 한번씩은 다른 길을 걷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정상에 오르면 대부분 문수사를 거쳐서 내려온다. 그냥 내려오지 말고 문수산성의 흔적을 보면서 내려오는 것도 좋다. 신라 토기가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성으로 판단된다. 여유 되면 남암산을 둘러서 와도 되고 국수길로 바로 내려오지 말고 청송사지 삼층석탑과 청송사지 부도를 살펴보고 오는 것도 좋다. 여유는 더 많은 것을 보게 하고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산도 인생도 그렇다.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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