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숙칼럼]남산에 꼭 타워형 전망대를 세울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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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칼럼]남산에 꼭 타워형 전망대를 세울 필요는 없다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3.01.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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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숙 논설실장

전망타워는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내려다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인공시설물이다. 근래 들어 전국 지자체들이 이 같은 조망(眺望)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곳곳에 전망대(展望臺)를 설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망대가 하나같이 지나치게 크거나 높기만 해서 보기에도 부담스럽다. 마치 자연그대로인양 자연 속에 숨어드는 정자를 지어 조망의 욕구를 충족했던 선조의 지혜는 어디로 갔는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울산에서도 남산에 전망대와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울산시는 2023년 당초예산에 ‘남산 전망타워 및 케이블카 설치 사업 제안서 타당성 검토’를 위한 용역비 8000만원을 반영했다. 전망타워는 남산 은월봉에 100m 높이로 세운다. 케이블카는 태화강국가정원 안내센터~남산루 일원을 연결한다.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800억원 가량의 사업비는 민간자본으로 유치하겠다고 한다. 전망대 건립은 십수년 전부터 수시로 거론됐던 터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혹여 시대정신에 뒤떨어진 서울 남산타워(1975년 236.7m)나 부산 용두산공원 타워(1973년 120m), 대구 우방타워(1983년 202m)를 좇아가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건립시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에 개장한 남원 춘향타워(78m)와 에어레일은 이들 타워보다 더 볼썽사납다.

노르웨이 베르겐시에는 플뤼엔산(320m)이 있다.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플뤼엔산에 오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푸니쿨라(밧줄의 힘으로 궤도를 오르내리는 산악교통수단)를 이용한다. 플뤼엔산 정상에는 음식과 차를 파는 카페와 등산용품을 파는 작은 가게, 어린이 캠프시설, 화장실, 전망을 위한 계단 등 작은 건축물들이 산과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나무가 울창한 오솔길을 산책하기도 어렵지 않다. 스카이라인을 훼손하지 않고 산의 정취를 오롯이 보존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평지에 조성된 파리시가 타워형 전망대 에펠탑을 필요로 했다면 베르겐시는 산을 이용해 최소한의 편의시설 설치만으로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이다.

울산은 남구 남산(121m), 중구 함월산(201m), 북구 무룡산(451m), 동구 염포산(203.4m), 울주군 문수산(600m) 등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나지막한 산이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멀리 영남알프스 1000m급 7개의 산봉우리도 울산에 주소를 두고 있고 어느 봉우리를 올라도 울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굳이 ‘배보다 배꼽이 큰’ 부조화가 예상되는 높다란 타워를 세울 필요는 없다. 건축가 승효상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서양도시들은 평지에 만들어졌다. 평지도시가 다른 도시와 구분되기 위해선 뭔가를 우뚝 세워야 한다. 그건 그들의 랜드마크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배산임수로 만들어졌다. 산들이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그 자체가 랜드마크다.”라면서 “터에는 무늬가 있고, 건축설계는 그 지문(地紋) 위에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남산에는 이미 지문을 활용했다고 할 수 있는 전망시설인 남산루, 솔마루정, 비내정 등의 정자가 여럿 세워져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남구청장 시절에 솔마루길과 함께 조성한 정자다. 스카이라인을 훼손하지 않을 낮은 건축물로 주변을 더 확장해서 도시에 어울리는 산상 도서관이나 음악실·미술관, 카페 등 문화시설을 운영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다만, 교통수단이 없어 두발로 걸어가지 않으면 올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거창한 찻길을 새로 내거나, 태화강과 4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위험한 케이블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푸니쿨라든 모노레일이든 알프스산을 오르는 산악기차처럼 세월과 함께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교통수단을 찾아야 한다. 조망은 현재 정자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새로운 전망시설보다 교통수단을 먼저 설치할 일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그리고 울산이다. 높디높은 알프스산의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점점이 박힌 예쁜 집과 유려하게 흘러가는 산악기차가 아니던가. 개발만능주의나 무조건적 보존주의와 같은 획일적 시각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 것인가를 깊고도 넓게 생각해야 한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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