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의 음악이야기(230)]팔레스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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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의 음악이야기(230)]팔레스트리나
  • 경상일보
  • 승인 2023.01.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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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팔레스트리나(1525~1594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는 르네상스(1400~1600)시대의 작곡가로서, 그 이름을 그 시대부터 현재까지 떨치고 있는 로마악파(Roman School)에 속하는 음악가이다.

팔레스트리나는 어릴 때부터 로마에서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1537년 12세에 산타마리아마조레대성당의 합창 단원이 됐고 19세에 성아가피토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됐다. 승승장구하던 팔레스트리나는 22세가 되던 1547년 결혼하고 1551년 1월 성베드로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의 독창자로 임명되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교향 바오로 4세가 “결혼한 사람은 성가대에서 노래할 수 없다”고 하여 4년 후 성베드로대성당에서 해임됐다. 그는 작품 활동에 더욱 정진하여 해임된 그해 산조반니인라테라노대성당의 음악감독에 부임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561년에는 산타마리아마조레 대성당의 음악감독을 맡아 모테트와 미사곡들을 출판했다.

그러나 이미 1517년 종교개혁이후 개신교가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받으며 성장하자 가톨릭 교회의 음악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때 가톨릭교회에서는 로마 가톨릭 음악을 다시 부흥시킬 음악가를 찾다가 결국 자기들이 해임시켰던 팔레스트리나를 다시 성베드로대성당 음악감독으로 초빙했다.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온 팔레스트리나는 104개의 미사곡, 400곡 이상의 모테트, 송가 등을 작곡했고, 140곡의 마드리갈도 남겼다.

팔레스트리나의 본명은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Giovanni Pierluigi)이다. 당시에는 본명보다 어디 출신이라는 고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관습이 있었다. 팔레스트리나는 지오반니 피에르 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로 불리다가 나중에 팔레스트리나가 되었다. 다(da)는 ‘~에서 온’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도 본명은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이지만 빈치(Vinci)에서 온 사람이기에 ‘빈치’로도 불렸다.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추천음악=팔레스트리나 작곡, Missa Papae Marc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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