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숙칼럼]‘다음 소희’ 없는 세상을 위한 울산교육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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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칼럼]‘다음 소희’ 없는 세상을 위한 울산교육감 선거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3.02.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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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숙 논설실장

<다음 소희>는 개봉 10일차에 6만명이 관람했다. 인디영화로서는 꽤 좋은 성적표다. 지난해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폐막작으로 먼저 공개됐고 지금 국내 상영 중이다. 줄거리는 2017년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동통신사 콜센터 현장실습 여고생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소희는 직업계고 3학년 학생이다. 담임이 대기업 사무직이라며 추천한 통신회사 콜센터에 실습을 나간다. ‘해지방어팀’에서 날마다 감정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지만 담임도 부모도 그의 하소연을 외면한다. 활달한 성격에 춤추기를 좋아하던 소희는 점점 자괴감에 빠지고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자살을 선택한다. 소희 자살사건 처리를 맡은 경찰관 유진은 죽음의 이유를 찾아 나선다. 학교­기업­교육청을 상대로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분노하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만다.

영화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어디에선가 있었던 극단적인 사례 하나를 들어 침소봉대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소희 유진 둘 모두 우리가 수시로 마주치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은 사람, 보고만 있었던 사람은 바로 우리 어른들이다. 우리가 지금도 ‘다음 소희’를 만들고 있다.

울산교육감 보궐선거가 43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는 현재 4명이다. 학생들에게, 학부모들에게 예산으로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솔깃한 공약을 내놓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수학여행, 체육복, 운동, 건강, 문화생활까지 공짜로 책임지겠다고 공약한다. 기초학력 보장이니,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제로화니, 성적 향상 방안도 내놓는다. 언제나 그랬듯 부모의 지갑이나 진학률·취업률에 공약이 쏠려 있다. 겨우 보탠 것이 이념적 논쟁이다. 포괄적 성교육과 노동인권교육을 두고서 보수와 진보 진영이 설전을 벌인다.

<다음 소희>를 만든 정주리 감독은 “아이들이 어쩌다 이런 일을 겪었을까”라는 안타까움에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교육감 후보라면 ‘우리 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출마를 선언해야 한다. ‘수포자 제로화’가 아니라, 수학을 포기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교육감이 필요하다. ‘맞춤형 기초학력 지원’이 아니라, 국·영·수가 모자라더라도 운동이나 그림이나 역사나 뭐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하면 모범 학생이 되는 학교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교육감이 돼야 한다. 모든 학생이 국영수를 잘 할 수도, 잘 할 필요도 없다. 아니 학교가 가르친 대로 모두가 국영수만 잘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학습자의 과목 선택권이 보장되는 고교학점제가 2025년부터 도입된다고는 하지만 국영수 중심의 교과과정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과목을 선택하게 할 것이 아니라 각 과목을 두루 경험하게 하되 학점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제각각 좋아하는 과목에는 높은 학점을 신청하고 싫어하는 과목에는 낮은 학점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다채로운 미래 세상에 맞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길러낼 수 있다. 교과과정에 아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 맞는 교과과정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맞춤형 교육’이다. 그런 건 교육감이 아니라 교육부가 할 일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다음 소희>에서도 교육청 장학사는 유진에게 “취업률이 낮은 학교는 예산지원을 못 받아서 문을 닫아야 하는데 어쩌겠냐”면서 “이제 교육부로 갈거냐”고 당당하게 되묻는다.

교육감의 권한은 의외로 막강하다. 지역교육청과 일선 학교의 예산편성권과 교장 등 인사권, 각종 정책결정권을 갖는다. 외국어나 자율형사립고 등의 설치·폐지, 교과교실제의 확대 및 학생 평가방식 결정도 교육감에 달렸다. 안 하거나 못 하고 있는, 그래서 수많은 ‘다음 소희’를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규칙과 제도를 바꾸고, 그래서 행복한 학교를, 그래서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교육감을 4·5보궐선거에서 뽑을 수 있었으면 한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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