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진달래가 반겨주는 산행…내려다보는 밀양은 한 폭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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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진달래가 반겨주는 산행…내려다보는 밀양은 한 폭의 그림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3.03.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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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으로 오르는 길엔 진달래꽃이 만발했으나 예년에 비하면 그 숫자가 많이 줄었다.

1. 종남산(終南山)은 밀양시 부북면 전사포리에 있는 산이다. 높이 663m로, 덕대산(620m)과 함께 초동면을 동·서·북으로 둘러싸고 있다. <여지도서>에 ‘영현은 종남산으로 부르며, 부의 서남쪽 15리에 있으며 기우제단이 있다’라고 돼 있다. 본래 이름은 밀양시의 안산으로 남쪽에 위치해서 남산이었는데, 종남산이라고 개칭했다. 남산을 종남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과 관련이 있다.

종남산(終南山)은 중국 주(周)나라의 수도 풍호(豊鎬, 현재 산시성 시안)의 남쪽에 있는 산이다. 대개 수도(首都)의 남쪽 산을 이르는 말인데, 흔히 남산이라고 부른다. 서울 남산의 다른 이름이 종남산인 것도 중국을 본뜬 것이다. 밀양의 종남산은 서울의 남산을 종남산이라고 부른 것을 모방하여 부른 것이다. 종남첩경(終南捷徑)이라는 말이 있다. 종남산이 벼슬의 지름길이라는 뜻으로, 종남산에 지조가 높은 체하고 은거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를 경모하여, 허명(虛名)이 세상에 날 것이므로 벼슬을 하는 첩경이 된다고 비꼰 말이다. <당서>(唐書) ‘노장용전’(盧藏用傳)에 나오는 말이다. 그만큼 종남산이 서울과 가깝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산자락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3월 말의 종남산은 밀양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산자락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3월 말의 종남산은 밀양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종남산이라는 말은 <시경>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제일 먼저 나온다. ‘남산처럼 영원하시어 무너지지 않고 이지러지지 않는구나.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무성하시어 당신의 자손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 종남산은 지신밟기 소리 중의 하나인 <성주풀이>에도 등장한다. <성주풀이>에서 종남산은 지하의 신성한 세계이다. 그런데 밀양에서 채록된 <성주풀이> 가사에 실제로 밀양의 종남산이 나온다. “밀양 땅을 둘러보니 종남산이 제일이다/ 이 집터가 생길라꼬 종남산 줄기로 흩어져서/ 학의 머리 세를 놓고 용의 머리 집터 닦아/ 집터 우에 주초 놓고 조초 우에 기둥 세워.” 재목을 구하고, 집터를 마련한 뒤, 성주를 모셔오기까지를 구술하여 성주가 이 집에 좌정하게 된 내력을 말하고 있다.

2. 종남산을 오르는 길은 몇 개가 있다. 나는 가장 흔한 코스인 ‘예림 대동아파트 입구~관음사~헬기장~봉화재~능선 삼각지~종남산 정상~팔각정~임도~예림 대동아파트 입구’의 원점 회귀 코스를 택하였다. 밭고랑을 지나 바로 산으로 진입했다. 팔각정까지 임도가 나 있어서 정상에 가려면 곳곳에서 임도를 만날 수밖에 없다. 최대한 임도를 피해서 걸었다.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파른 봉우리 세 개를 넘으면 종남산 정상이 보인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예년이면 온통 진달래꽃 붉은색으로 빛날 것인데, 아쉽게도 꽃이 많지 않았다.

종남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밀양에는 김해 자암봉수대에서 봉화를 받아 백산봉수대-종남산봉수대-추화산봉수대-분항산봉수대로 이어지는 4개의 봉수대가 있다. 밀양의 봉수대는 고려 1149년부터 조선 1894년 갑오개혁으로 봉수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운영되었는데, 백산봉수대는 김해의 자암봉수대와 종남산봉수대 사이의 거리가 멀어 1654년에 신설되었다. 전망 좋은 봉수대 한곳에서 막걸리 대신 과일 몇 조각에 커피 한 잔을 했다. 별미였다.

종남산은 전망이 참 좋다. 밀양 시내와 밀양 분지를 둘러싼 산들이 병풍처럼 눈에 들어온다. 밀양 시내를 가르는 밀양천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천(川) 따라 이어지는 들판과 그 들판을 가득 채운 비닐하우스들, 틈틈이 솟아 있는 작은 산봉우리들, 그 위를 장엄하게 덮고 있는 구름, 3월 말의 종남산은 밀양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길은 그래도 진달래꽃이 만발하다.

3. 1950년대에 나온 대중소설 중에 김내성이 지은 <청춘극장>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소설 속에 진달래꽃에 관한 전설이 나온다. 스님을 사모한 여인의 비극적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맨발로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는 고행을 택한 스님, 진달래꽃은 그 스님의 발바닥에서 나온 피가 묻어서 생긴 꽃이라고 했다. 평안도 지방의 전설이라는데, 읽으면서 역시 평안도를 배경으로 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진달래꽃은 참꽃이라고도 하고 두견화라고도 한다. 꽃을 먹을 수 있고 약에도 쓸 수 있어서 참꽃이라 하고, 두견새(접동새)와 관련된 슬픈 전설로 인해 두견화라고도 한다. 그래서 진달래꽃으로 담근 술을 두견주라고 한다. 두견주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백과 두보가 진달래로 술을 담가 마셨다는 고사가 전할 만큼 역사가 길다. 진달래는 화전이나 화채로도 쓰인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핀다. 진달래꽃보다 뒤에 피는 꽃으로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것이 산철쭉이다. 산철쭉은 독성이 강하여 먹을 수 없다. 그래서 개꽃이라 불렀다.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는 진달래꽃이 진 뒤에 연달아서 핀다고 하여 연달래라고 한다. 산철쭉보다 더 늦은 시기에 더 분홍빛의 꽃이 피는 것이 철쭉이다. 한방에서 가끔 진달래와 혼동하여 쓰는 이름이 영산홍이다. 영산홍은 진달래보다는 늦게 피고 철쭉보다는 일찍 핀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조선조 세종 때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4. 하산 길은 지루했다. 임도여서 더 그랬다. 산 여기저기 벌목의 흔적들, 덕분에 벌거숭이 된 산, 오고 가는 차들, 산행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들이었지만, 제일 마음 아픈 것은 벌거숭이 같은 산 모습이었다. 왠지 강제로 옷을 벗긴 채 학대받고 있는 느낌, 하루빨리 산이 숲으로 우거졌으면 좋겠다.

하산 끝에 간밤에 읽었던 한시가 생각났다. ‘꽃구경 갔다가 모르는 새 술에 취해/ 나무에 기대어 잠들었더니 해가 이미 기울어가네/ 손님들 흩어지고 술에서 깬 깊은 밤에서야/ 다시금 붉은 촛불 잡고 남은 꽃을 즐기네 (尋芳不覺醉流霞 倚樹沈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내가 좋아하는 중국 당나라 때의 서정 시인 이상은의 <화하취>(花下醉)라는 시이다. 이 시가 생각난 것은 종남산에서 만난 진달래꽃 때문이다. 4행의 시구, 남은 꽃((殘花), 잔화는 거의 지고 남은 꽃, 또는 시들어 가는 꽃을 뜻하는 말이다. 왠지 기분이 그랬다.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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