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1)]꿀잼 문화도시 울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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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1)]꿀잼 문화도시 울산을 꿈꾸다
  • 경상일보
  • 승인 2023.05.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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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헝가리·포르투갈 대사

어릴 적 울산은 말 그래도 산업도시였다. 온산 석유화학단지 내 굴뚝연기를 자랑스러워하고, 또 6월 공업축제 퍼레이드 행렬과 밤하늘 가득한 불꽃놀이는 당시 국내 최고였고 울산의 자랑거리였다. 그런 울산이 내 눈에는 오늘도 세계 최고다. 지난 34년간 외교관으로서 전 세계 많은 곳을 경험해 본 바로는, 울산은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이 세계 일류에 올랐다. 곧 이차전지 분야가 국가첨단 전략 산업단지로 선정되고 수소산업의 생태계가 상용화된다면 산업도시로서의 위상은 더욱 굳건해 질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도시로서의 울산의 현주소는 어떤가? 얼마 전 울산예술문화회관에서 오리지날 ‘캣츠’ 공연을 본적이 있다. 1400여석을 가득채운 관객들이 출연자들과 하나가 되어 감동을 한껏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 이처럼, 국내 2위의 부자 도시인 울산의 시민들은 수준 높은 공연문화와 예술작품을 즐길 자격이 충분하고 또한 준비도 되어있다.

필자는 그라피티 아트(Graffiti Art)와 이로부터 발전한 어반 아트(Urban Art)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해외 예술가들과의 개인적 인연을 소개하고, 어반 아트의 ‘영남권 허브, 울산’이라는 꿈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 빌스의  주앙 몬데스 기념 조형물.
▲ 빌스의 주앙 몬데스 기념 조형물.

그라피티는 1960년대 중후반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도시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이름과 메시지를 거리 벽에 불법으로 남기는 행위에서 시작되어, 1970년대 지하철 낙서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뉴욕이라는 환경 속에서 성장한 미술 장르중 하나이다. 그라피티 작가들은 물감과 붓 같은 전통적인 회화 재료보다 빠른 시간 내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는 스프레이 캔을 선호했다. 그라피티는 1980년대, 1990년대를 거치면서 후기 그라피티 미술로 발전했는데, 양식이나 기술, 재료 등 모든 면에서 혁신적 발전을 거듭했다. 마커나 스프레이로 빠르게 그리는 작업보다 나이프나 드릴, 심지어 폭약 등을 재료로 해 도시의 거리를 누비면서 예술적 미를 심는 다양성을 추구했다. 오늘날 어반 아트는 그라피티를 포괄하면서, 좁은 실내 아틀리에 공간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나 조각의 범주를 뛰어넘어 도시 전역을 작업실로 해 창작되는 모든 시각 예술 형태를 망라한다. 물론 그라피티 예술의 본질인 저항과 풍자를 바탕으로 현대 도시문화의 병폐와 정치적 담론을 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은가!

필자와 어번 아트 예술가들과의 인연은 십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존 원(Jon One)은 캔버스위에 겹겹이 쌓인 물감과 대담한 붓 터치가 돋보이는 미국인 아티스트다. 2013년 외교부 국제기구협력관이던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해 그라피티 아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 주던 그 모습, 그리고 호텔신라 로비에서 춤을 추면서 즉흥적으로 그려나간 작품이 던져준 그 아름다움의 감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면서 프랑스 아티스트 우표제작 및 에어프랑스 창립 80주년 기념 보잉 777기종 협업작품을 선보였고, 2016년 프랑스 정부의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다.

세퍼드 페어리의 예술의 전당 벽면 작품.
세퍼드 페어리의 예술의 전당 벽면 작품.

빌스(Vhils)는 아직 30대 이지만, 필자가 포르투갈 대사시절 이미 포르투갈 최고의 아티스트로서 인정받고 있던 천재 예술가이다. 2017년 여름 빌스 작업실 방문 때 그 거대한 규모에 놀랐고, 그 후 1604년 한반도에 도래한 최초의 서양인인 포르투갈인 주앙 멘데스의 일화를 소개하고 동 기념 조형물 제작을 재능기부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빌스가 이를 수락했을 때 덥석 안아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2023년 완성되어 통영시와 리스본에 각각 설치되었다.

빌스의 소개로 포르투갈에서 만나본 미국 예술가 세퍼드 페어리는 실크스크린 기법의 포스터 또는 스티커 작품으로 어번 아트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Hope’포스트 제작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헤네시 한정판 꼬냑 협업 및 프랑스 에펠탑 ‘지구의 위기(Earth Crisis)’ 시리즈 작품 등을 통해 명성을 쌓고 있다.

제우스(Zevs)는 다국적 기업들이 현대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면서 샤넬, 루이비통등 하이브랜드의 로고를 물감이 흘러내리는 형태로 변형시키는 흘러내림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2016년 예술의 전당 ‘위대한 그라피티 그룹전’ 당시, 필자가 사준 돼지국밥을 정말 맛있게 먹고는 감기기운과 매스꺼움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면서 그 후 볼 때마다 그 국밥집을 다시 가자고 졸랐다.

제우스는 현재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Room 711’ 제하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 외에도 그라피티 고양이 작가인 무슈샤(M.Chat), ‘오 팡테옹’ 프로젝트로 유명한 JR, 1세대 그라피티 아티스트 크래쉬 (John Matos Crash)와 2018년 소더비 경매장에서‘풍선과 소녀’의 낙찰 후 파쇄로 유명세를 탄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도 거리 예술가 중 한명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만난 제우스는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울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며 “7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울산 예술가가 남긴 그 작품들을 그라피티 아트의 시초로 본다”고 평했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은 도시예술의 허브가 될 수 있는 역사성과 명분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꿀잼도시 울산에 제우스, 존원, 빌스, 무슈샤, 뱅크시 등이 들락거리고 그들의 작품들이 거리 곳곳에 설치되는 그 미래를 꿈꿔본다.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헝가리·포르투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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