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산책을 하는데 손을 꼭 잡은 노부부가 앞서 걸어갔습니다.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걸음으로
손에 손을 의지해 중심을 기울이고
한 손에 약봉지를 꽉 그러쥐고
골목에 떨어진 능소화를 피해 걷는데
생을 놓친 꽃들의 황홀에
뎅강, 목이 잘린 골목이 발아래 뒹굴었습니다.
태양의 그늘도 추월할 수 없는 생의 속도
식후 30분, 한 회씩 분할된 목숨은 흔들림 없고
평생이라는 말은 얼마나 따뜻한 위험인가요.
마주 잡은 노부부의 손을 섣불리 지나칠 수 없어
더 느린 보폭으로 길의 주름 늘려가는데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좁은 골목이 통째 느려져
다시 출발선에 선 듯 느른하여
뒷모습만으로도
앞모습이 화평하였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걷는 노부부의 배려가 만든 ‘느린 골목’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하지만 심하게 기운 걸음에 한 손엔 약봉지를 꽉 그러쥐었으니, 평생의 고투 끝에 남은 건 망가진 몸뿐이다. 그러니 서로 기대고 의지해야 ‘중심’을 잡아갈 수 있다.
능소화는 골목에 어울리는 꽃이다. 능소화 꽃은 붉은 노을빛인데 그마저도 바닥에 떨어져 있으니 황혼에 이른 부부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떠오른다.
더구나 능소화는 덩굴식물이라 혼자 설 수 없어 담장에 기대어 핀다. 저리 서로 의지해서 걷는 노부부의 모습과 같다.
능소화보다 더 고운 것은 떨어진 꽃을 밟지 않고 피해 가는 그네들의 마음 씀이다. 이 작은 배려가 늙어서도 손을 꼭 잡고 걸어가게 하는 힘 아닐까. 그러니 뒷모습에서 이미 화평한 앞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그 고운 마음은 시인에게도 전달되어 시인은 노부부를 섣불리 지나치지 않고 느리게 느리게 뒤따라 걷는다. 골목 안이 화평하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