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참 쉬운, 참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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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참 쉬운, 참 어려운
  • 경상일보
  • 승인 2024.01.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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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희 울산 대송고 교사

‘책’ 한 권, 쉽고도 어렵다. 책을 사기는 쉽다. 영향력 있는 작가의 따끈한 신간도, 제목만 들어도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도, 최근 유행이 집중적으로 담겨 있는 책 한 권도, 도서 앱을 열어 터치 몇 번 하면 몇 시간 안에 집 앞까지 찾아올 정도로 쉬운 요즘이다. 이렇게나 간편하다 보니, 지적 호기심이라는 지나치게 과장된 타이틀을 앞세워 사놓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든 만큼 많은 책이 책장 속 자기 자리만 지키고 과묵하게 서 있게 되었다.

책을 사는 설레는 가벼움과는 정반대로, 책을 펼쳐 읽는 순간은 참 무겁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 가며 나열된 문자들을 읽어 내려가는 시간을 견디기는 왜 그리 힘들까? 내용이 어려워서 읽기가 힘들다는 핑계는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겠다. 내용도 쉽고 재미도 있으며 실용적인 책들이 가득한데도, 책 한 권 손에 들고 무던히 읽어 내려가려니 머리부터 아파진다. 이렇게 온갖 핑계를 대며 책장 살만 찌우던 내가, 멀리서 책장을 바라보다가 ‘내가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지적 허영심으로 책을 샀구나!’ 하는 마음 찌릿한 성찰을 하고 나서야 책장을 다시 볼 용기가 생겼다. 내가 지금 바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이고 그것으로 나의 생활에 무엇을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용기 뒤에 숨어 찾아왔다.

책과 이렇게 조금씩 친해지는 동안 비슷한 느낌이었던 ‘글’도 나에게 다가오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기면 글이 술술 풀려나오듯 쉽게 쓰이는 줄 알았다. 나는 글 한 편 쓰려면 ‘술술’은커녕 구멍이 송송 뚫린 바구니에 한 문장씩을 겨우겨우 담아내는 느낌이다. 그것도 한 번에 바로 담아내지도 못하고, 담았다가 뺐다가, 문장을 오렸다가를 붙였다가를 무한대로 반복하면서 말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써보고 나니, 책상에 앉아 글이 술술 나올 정도로 고민하고 애를 쓰는 분들의 애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은 내가 글을 써본 경험이 없었으니, 역지사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나의 투덜거림은 끝이 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멀리서 보면 쉬워 보이지만 진지한 나의 실천은 쉽지 않았다. 쉬워 보인다고 금방이라도 큰 결과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새해 결심으로 늘 내걸었지만, 언제나 작심삼일의 친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면 어떤가! 쉽게만 생각했던 책과 글을 직접 행동하며,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되었고 한 뼘 더 가까워진 마음으로 어떻게든 읽고 써보겠다는 다짐이 남았다. 쉽고도 어려운 것이 책과 글뿐일까. 하루하루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도 쉬워 보이지만 그 반복된 일상을 매 순간 제대로 살아내기는 쉽지 않다. 책을 한 자 한 자 읽어내듯, 한 문장을 반복해 수정하듯, 새로이 받은 올 한 해도 그 마음과 실천으로 살아내겠다는 나의 새해 결심에 마음 따듯한 믿음이 생긴다.

김건희 울산 대송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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