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1인당 지역생산액(GRDP)이 전국에서 가장 앞서는 제조업 도시다. 산업수도를 자임하는 울산의 성장은 에너지 부문에서도 도드라진다.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58.7MW급 고리원자력이 지난 1977년 울산과 부산의 중간 지점에 건설돼 본격적인 에너지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 이후 본격적인 산업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고리원자력은 7호기까지 건설되었고 울산 인근의 월성원자력과 울진원자력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의 전력 생산 공급벨트로 확대되는 매개가 되었다.
에너지 도시로서 울산의 명성은 에너지 수요(소비)면에서도 뚜렷하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및 정유업계 등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주력 산업군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다.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울산의 전력 소비량은 전국의 6%를 넘어서고 있고, 1인당 전력 소비량이 전국 평균 대비 3배 수준으로 높다. 울산시 전력 소비의 83%가 이들 제조업 부문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에너지 공기업과 기관들이 지방 이전을 통해 울산에 자리잡게 된 점도 에너지 도시로서 울산의 도시적 특성을 더하고 있다. 이는 울산의 에너지 공급과 수요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에너지공단과 한국동서발전, 한국석유공사,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그간 에너지 공급과 수요관리, 정책 연구 등 국가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 온 기관들의 공공 자산과 울산의 산업과 학계, 연구기관들의 노력이 연계될 수 있는 훌륭한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에너지 도시로서 울산의 명성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후위기에 대응한 탄소중립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세계 각국 도시들은 석유 등 화석연료 중심에서 탄소중립에 걸맞은 에너지원과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갖춘 혁신적인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주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발전 시설을 늘리고, 산업과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배가하는 노력을 추진중이다. 반면에 울산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국의 1.8%에 그치고, 그 마저도 대부분 폐기물 등을 활용한 바이오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어 갈 길이 멀다.
다행히도 울산은 산업계와 학계, 연구기관 등의 혁신 인프라가 준비돼 있고, ICT를 필두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들에 대한 기반도 비교적 충분하다. 이러한 도시 역량을 활용, 울산의 기업들과 협력해 제조업의 에너지 효율 혁신을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한다. 세계적인 수준의 에너지원단위와 지금보다 훨씬 향상된 에너지 효율 체계를 갖추도록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탄소중립 시대에도 경쟁력을 갖춘 산업군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러한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 혁신과 함께, 지금의 전통적인 에너지 공급 체계에 덧붙여 해상풍력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무탄소 에너지의 생산과 공급 기반을 더욱 확충하고 다양화해야 한다. 특히 올 6월에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은 울산의 친환경 발전원을 늘리고 지역내에서 전력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분산형 전력 자립 체계를 갖추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향후 울산이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이 된다면, 울산의 신산업 역량을 증대시키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이같은 에너지 혁신에는 넘어야 할 많은 장애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겠지만, 전통 제조업에 기반한 산업수도로서 울산의 역할을 넘어 데이터 센터, 이차전지 등 에너지 신산업 도시로 성장해 가는데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이므로 포기하지 않고 가야 할 길이다. 새해를 맞은 울산이 현재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에너지 혁신을 통해 더 큰 도시로 성장해 가도록 울산의 리더십과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해 본다.
한영배 한국에너지공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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