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주역보다 빛나는 조역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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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주역보다 빛나는 조역의 시대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4.11.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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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모두 다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영화 드라마에서 그렇다. 예능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자는 출연자를 돋보이게 돕는 조력자이다. 그런데 이런 조연과 조역들이 주역만큼 빛나고 돋보일 때 그 이야기는 성공하고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요즘처럼 영화와 드라마에서 훌륭한 조연들이 많은 시대가 있었을까. 배우로서는 이문식, 오달수, 오정세, 류현경, 장영남 등이 뛰어난 감칠맛 연기로 극을 빛나게 하는 이들이다. 여러모로 보아 주연 같은데 항상 조연으로 나오는 배우가 있다. 이경영씨다. 그도 한때는 ‘비 오는 날 수채화, 1990’ 등에서 잘생긴 외모로 주연을 하였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조연으로, 그것도 악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보인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재벌과 부패언론과 결탁하여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을 연기하여 모두에게 명품배우로 인식시켰다. 드라마 ‘비밀의 숲’의 재벌 총수처럼 선하고 도덕적인 페르소나를 쓰고, 뒤로는 온갖 음모를 획책하며 잔인하고 비열한 악행을 저지르는 악당을 연기하였다. 위선자의 역할을 아주 맛깔나게 연기한다.

예능에선 유재석씨가 ‘국민진행자’로서 출연자를 빛나게 하는 최고의 조력자로 꼽힌다. 겸손하고 배려하며 편안한 진행을 하는 달인이다. 긴 무명의 시기에 재미없었던 개그맨이었다. 그러나 ‘서세원 쇼’에서 걸출한 입담으로 스타가 되기 시작하였다. 무명세월을 견디고 최고의 진행자가 된 이들에는 개그맨 신동엽씨와 정선희씨도 있다. 이 둘은 우릴 유쾌하게 만든다. 신동엽씨의 진행은 능수능란한데 차분하게 프로의 무게를 잡아주기도 하고 능글하게 끼를 발휘해 포복절도하게 띄우기도 한다. 정선희씨의 그 뛰어난 입담과 재치, 부드러운 진행실력은 발군이다. 여성 진행자가 깔깔 웃는 것이 시청자가 보기에 거슬리지 않고 유쾌함이 번지게 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때론 출연자와 밀당을 하고 격식과 틀을 흔들어 확 주의를 끄는 연출과 노련한 진행이 그녀의 내공을 짐작하게 만든다. 너무나 힘든 상처를 딛고 일어선 모습이기에 더욱 그 멘탈과 인성에 탄복하게 되는 것이다.

높은 안목을 가진 국민과 시청자를 탄복하게 만들려면 이런 조역들은 엄청난 노력을 할 것이다. 한강씨의 노벨문학상에 일등조력자는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간결하고 응축된 아름다운 문체를 번역한 데보라씨다. 한강씨가 ‘마음이 통한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그녀다. 번역하며 한글의 뉘앙스와 깊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쏟은 그 치열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주역만큼 조명을 받는 이런 조력자 말고 정말 눈에 띄지 않고 숨은 이들이 훨씬 많다. 위험한 액션을 하지만 얼굴을 보일 수 없는 대역배우, 서로 다른 언어의 숨통을 틔우며 소통을 돕는 동시 통역가, 늘어나는 독거노인의 손발 및 친구가 되는 요양 간병인, 팩트 체크자와 페이지 터너 등 수없이 많다. 펙트 체크자는 신문기자 취재의 사실 여부를 체크 하는 역할이고 페이지 터너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의 악보를 넘겨주는 이들이다. 자신의 역할과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으로 법을 어기며 사람들의 귀를 더럽히는 인간이 있고,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감과 내적 성취감으로 깊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주연배우와 영화감독도 감동을 위한 조력자이고, 연주자도 청중에 깊은 울림을 주기 위한 조력자이다. 지구에서 강력한 주연은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유전자 DNA이고 우리는 모두 조연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위한 조력자이고 대통령과 정치인,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조력자이다. 조력자의 덕목은 진정성과 겸손함과 책임감이다. 국민이 대통령 내외를 지켜보고 있다. 사악한 욕망으로 주인공인 국민을 능멸하지 않았는지, 옹팍한 자존심으로 국민을 오도하지 않았는지, 정당과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을 배덕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하겠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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