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정한에 눈물짓다
백초를 다 심어도 대는 아니 심을 것이
젓대 울고 살대 가고 그리느니 붓대로다
이후에 울고 가고 그리는 대, 심을 줄이 있으랴 -<청구영언>

대숲에 바람 지나는 소리를 듣고 자라서 그런지 그 서늘한 대바람소리는 심신의 먼지를 쓸어주는 어머니의 손길과도 같은 존재이다. 집 뒤 언덕바지에 대숲이 우거져 있어 언제나 그 숲에, 그 바람에 기대어 스무 해를 자라 먼 곳에 나와 살면서도 대숲에 기대는 안온한 맛과 멋을 잊을 수가 없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면 언제나 푸른 대바람 소리가 먼저 가슴으로 번져와서 그 울림을 추억하게 한다. 여름의 바람 소리도 시원하지만 쏴한 겨울 대바람 소리야말로 충분히 겨울답다. 일렁일렁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으며 무리지어 군무를 춘다. 바람을 흔들어 밖으로 몰아내고 집안은 언제나 안온한 온실 같기도 한 시골집이 그립다.
대숲은 바람만 막아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속을 비우고도 대쪽 같은 곧은 기상과 기개의 상징이 곧 대(竹)다. 맑은 바람으로 맑은 정신을 들게 하는 일상의 가르침이 그 속에 있다. 왜 선비의 다섯 벗이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인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집안에 대가 없으면 심성이 삭막하다고 대를 심어 왔던 것이다. 남아의 기상은 대에서 나오고 여아의 절개도 역시 대를 보며 자람에서 나온다고 생각되어 어른들이 곧은 대를 심어 온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위의 작자는 ‘백초(百草)를 다 심어도 대를 아니 심겠다’는 것인가. 대금, 소금 모든 젓대는 대로 부는 악기이니 젓대 소리야말로 이별의 정한에 우는 이에게는 얼마나 사무치는 소리로 들리겠는가? 또한 꽂아 쏘아버린 살대는 가면 아니오는게 철칙이니, 가고 아니 오는 님을 원망하다 대를 아니 심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립고 외로운 심사를 적어 올리느니 이 붓대이니 다시금 백초를 다 심어도 대를 아니 심고 말겠구나. 싶기도 하다.
이별의 정한에 울다 대를 원망하는 이 작자는 이름도 아니 남기고 훌쩍 떠나고 말았으니, 옛 우리 선조들은 모두가 풍류가객이었다. 생활이 고달프면 고달파서, 외로우면 외로워서 모두가 시를 짓고 부르며 스스로를 달래었던 것이다. 어차피 100년 밖에 못사는 인생, 시나 짓고 노래나 읊을 일이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