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칼럼]참모들의 사상누각(沙上樓閣)
상태바
[이재명 칼럼]참모들의 사상누각(沙上樓閣)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4.12.16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재명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비상계엄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두개로 쪼개지기 직전이고 민주당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하루빨리 파면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통탄할 일이다.

이 모든 것은 대통령의 오판 때문임에 틀림없다. 특히 주변에 포진해 있던 참모(參謀)들의 책임은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나라는 왕 한 사람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참모들, 그러니까 대통령실과 국무의원들, 그리고 여당이 함께 져야 마땅하다.

탄핵은 비상계엄에서 비롯됐고, 비상계엄은 참모의 잘못된 보좌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는 민주당의 횡포를 잊으면 안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긴급 대국민 담화를 열고 12·3 비상계엄령 선포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대통령 말인즉슨 지난 2년 반 동안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 야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기 위해 정부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십 명의 정부 공직자 탄핵을 추진했으며 위헌적 특검 법안을 27번이나 발의하면서 정치 선동 공세를 가해왔다고 그는 주장했다. 급기야는 범죄자가 스스로 자기에게 면죄부를 주는 셀프 방탄 입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고, 많은 국민들은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비상계엄이라는 한순간의 오판으로 대통령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비상계엄이라는 함정은 워낙 깊고 위험한 것이어서 누구도 구해줄 방법이 없다.

지난 11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막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한 총리는 국회 현안질문에 출석하기 전 ‘국민께 드리는 말씀’ 입장문을 내고 “12월3일 밤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일관되게 반대했으나 끝내 막지 못한 것을 깊이 자책하고 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소임을 다하고 제가 져야 할 책임을, 변명이나 회피 없이 지겠다”고 했다. 참모로써 유구무언이라고 말한 것이다.

참모(參謀)는 사전적으로 ‘윗사람을 도와 어떤 일을 꾀하고 꾸미는 데에 참여함.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역사적으로는 책사(策士)들이 그 일을 했다. 특히 조선시대의 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기보다 참모들을 최대한 활용해 국정을 운영해왔다. 참모들은 최측근에서 왕을 보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히 견제하기도 했다. 역사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아니 되옵니다” 같은 반대 상소가 그것들이다.

<초한지>의 두 주인공 유방과 항우는 막상막하의 인물이었다. 전력에서는 초패왕 항우가 절대 우위였다. 하지만 천하는 유방의 수중에 떨어졌다. 초한지에서 유방은 “나는 재능에서 장량, 소하, 한신에 미치지 못해도 그들을 모두 다루었지만, 항우는 범증 하나도 다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거꾸로 말하면 유방은 장량, 한신, 소하 같은 훌륭한 참모들이 아니었으면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는 말이다.

왕은 아무리 궁지에 몰리더라도 자충수를 두면 안된다. 한순간에 권력을 잃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항상 참모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비상계엄 한방으로 크나 큰 자충수를 둬버렸다. 참모들은 모래 위에 세워놓은 누각처럼 쓸모가 없었다. 국민의힘은 이 상황에서도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직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배신자’ 운운하면서 분당을 부채질하고 있다.

맹자는 “군주가 군주 같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면 군주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폐위된 군주는 한낱 필부이기에 임금을 바꾼 것은 죄가 아니라고 했다. 순자는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 엎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지금, 대통령의 참모는 모두 살길을 찾아 뿔뿔히 흩어졌다. “아니 되옵니다”라고 면전에서 대들어야 했던 참모들은 이제 각기 제 변명에 바쁘다. 나라 꼴은 이 모양인데, 중앙이나 지방이나 참된 참모는 어찌 이렇게 드문지.

이재명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산업수도 울산, 사통팔달 물류도시로 도약하자]꽉 막힌 물류에 숨통을
  • KTX역세권 복합특화단지, 보상절차·도로 조성 본격화
  • 신입공채 돌연 중단…투자 외 지출 줄이고…생산직 권고사직…허리띠 졸라매는 울산 석유화학업계
  • 아마존·SK, 7조규모 AI데이터센터 울산에
  • 울산, 75세이상 버스 무료 교통카드 발급 순항
  • 방어진항 쓰레기로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