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더더욱 보고싶지만 옆에 없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청구영언>

어룬 님이란 그냥 그런 님이 아니다. 배필로 삼아 안고 업고 얼르는 그런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
황진이는 기생 신분이었으니 배필로 섬기는 낭군은 아닐지라도 마음과 몸으로 받드는 님을 붙들어 두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이런 시를 읊었을 것이리라.
세상을 주름잡는 풍운아에겐 그 주군이 님일 것이요. 여성에겐 고락을 함께하는 생의 동반자가 님이 아니겠는가.
동짓날은 긴 시간의 상대적인 개념이다. 임이 안 계시는 시간은 언제나 동짓날처럼 길고 지루하고 더디게 간다. 시간의 한 허리를 옷감 잘라내듯이 베어 내다니, 안 오시는 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우면 이렇게 과감하고도 도발적인 표현을 했겠는가. 그 지리한 시간을 베어 내어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굽이굽이’펼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춘풍 이불 속에.
내일이 동짓날이다. 올해도 이렇게 한고비를 넘어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동지는 태양의 힘이 가장 약해지고 다시 새로운 기운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그래서 예부터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도 했다.
황진이의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당대의 뛰어난 문인, 화담 서경덕과의 일화를 보면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16세기에 활동했으리라 추측한다.
황진이는 스스로 ‘화담’과 ‘박연폭포’와 ‘황진이’ 자신을 송도삼절이라 일컬었다. 얼마나 당돌하고도 자신만만한 천하에 둘도 없는 그런 풍류 여류였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영국에는 인도 대륙과도 안 바꾼다 하는 세익스피어가 있다면 한국에는 세익스피어와도 바꾸지 않을 ‘동짓달 기나긴 밤’의 시조가 있다고 감히 이야기 한 시인이 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홍안은 어듸 두고 백골만 누었나니./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중종 때 임제(林悌)가 북평도사로 임명받아 가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에 들러 이 시를 읊고 절했다가 부임하기도 전에 기생의 무덤에 절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하고 말았던 일화도 있다.
내일이 동짓날이다. 새로운 양기의 흐름을 따라 국운도, 개인의 소망도 다 번창하기를 희망한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