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과 방문하는 이들의 일상으로 구성된다. 한 도시의 이미지는 대형 건축물이나 관광 명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작고 평범한 공간들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 중 하나가 바로 공공화장실이다. 공공화장실은 단순히 생리적 필요를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배려와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공간이다.
일본의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The Tokyo Toilet Project)’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재단이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진행한 공공화장실 디자인 개선 사업이다. 일반적으로 작고 볼품없는 공간이라고 인식되는 공공화장실 디자인프로젝트에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오, 반 시게루, 마키 후미히코, 쿠마 겐고 같은 일본의 대표적 건축가와 세계적 디자이너인 마크 뉴슨 등이 참여하여 수준 높은 공공화장실 디자인을 제시하였다.
17개의 공공화장실을 16명의 건축, 인테리어, 시각, 패션, 광고 기획 전문가들이 디자인한 이 프로젝트는, 공공시설이 가진 기능적 측면을 넘어 예술적이고 혁신적인 공간으로의 변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공공화장실이 단순한 위생시설에서 벗어나 도시의 미학과 배려를 담은 매력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시게루 반이 디자인한 투명 화장실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사용자가 바깥에서 보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 유리로 바뀌어 사생활을 완벽히 보호해 주는 스마트글라스(Smart Glass) 기술을 적용하여, 공공화장실이 안고 있던 개방성과 안전성 사이의 문제점을 동시에 해소하는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 받았다.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로 완성된 공공화장실을 배경으로, 공공화장실 청소부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담은 영화 ‘The Perfect Days’는 2023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아쿠쇼 코지)과 에큐메니칼상(빔 벤더스 감독)을 수상 하였다. 이를 통해, 공공화장실이 건축·디자인 영역을 넘어 영화예술 분야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공화장실이라는 일상적 공간이 뛰어난 예술성과 결합하여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울산은 자연과 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그러나 현재 울산시의 공공화장실은 디자인과 관리 면에서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울산의 주요 관광지와 도심 공공화장실은 시설의 노후화, 접근성 부족, 청결 관리의 미흡 등으로 인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울산의 도시 및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한 단조로운 디자인으로 도시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화장실이 단순한 기능적 공간에 머물러 있는 한, 울산이 지향하는 문화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로의 도약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처럼 울산만의 차별화된 공공화장실 디자인 혁신을 통해 도시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 중 하나로 차별화된 공공화장실 디자인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울산의 공공화장실이 단순한 기능을 넘어, 도시의 고유한 정체성을 반영한 공간으로 재탄생 한다면 공공화장실이 도시 브랜드 이미지(City Brand Image)를 강화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뛰어난 건축가 및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공공화장실을 예술적 영감을 주는 공간으로 변모시킨다면 시민과 관광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공공화장실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배려와 품격을 보여주는 공간이며, 일상 속 작은 부분에서 울산의 미래를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울산이 가진 자연과 문화, 산업적 강점을 담아낸 공공화장실은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울산의 새로운 도약은 이러한 작은 변화에서 출발한다. ‘울산다운’ 공공화장실 디자인을 통해 울산이 더욱 매력 있는 도시로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