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집착을 버리면 즐겁다

싹싹 다 비워 말 그대로 ‘핥아놓은 죽사발’ 같은 빈 그릇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밥 한 그릇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수고로움? 우리를 살게 하는 밥 한 그릇의 고마움?
우리는 밥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 밥이 곧 법이다. 하지만 이 시에 등장하는 개는 그 귀한 밥이 담겼던 밥그릇을 가지고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고 있다. 개가 씹고 밟고 우그러뜨리며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공(空)의 경지.
조주선사가 어느 학인에게 했다는 ‘밥그릇이나 씻어라’는 일상에서의 수행과 평상심을 강조하는 말이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고 개가 배불리 밥을 먹고 그 그릇으로 장난을 치는 것처럼 가까이, 단순함 속에 있다는 것. 그래서 찌그러진 개밥그릇도 깨달음을 주는 경전이 될 수 있다는 것.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