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중에서도 2021년은 대대로 집안에서 보관했던 중요 유물들이 많이 기증된 해였다. 밀양박씨 밀직부원군 후 울산송정 창숙공파 문중에서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인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1884~1921) 의사의 친아버지인 박시규(1861~1928)를 비롯한 선대의 관료 생활을 보여 주는 문과 급제 홍패 및 고문서를 기증 받았다.
박시규는 숙부 박헌복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박상진 의사를 24세에 낳았다. 1885년 식년식 을유 문과 을과 4인으로 급제한 뒤, 성균관 전적(成均館 典籍), 사간원 정언, 홍문관 시독, 장례원 장례를 지냈다. 1910년 경술국치 직전에는 정3품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하기도 했다.
기증한 유물은 1885년에 실시한 식년식 문과에 응시해 제출한 시권(試券)과 을과 4인(전체 33명 중 7등)에 합격하고 받은 홍패, 1885년 외교에 대한 문서를 담당하는 부서인 승문원 부정자(承文院 副正字, 종 9품)에 임명하는 차첩(差帖) 이 있고, 이후 관직에 오를 때 마다 받은 1891년 통훈대부(通訓大夫) 성균관 전적으로 임명하는 고신교지와 1910년 정삼품 통정대부(通政大夫) 박시규를 규장각 부제학(副提學) 칙임관(勅任官) 3등(三等)으로 임명하는 고신교지, 박시규의 숙부인 박헌복 및 부인 손씨 추증 교지, 박시규의 부인 이씨의 교지를 비롯한 교지들이 있다.
이중 식년시 문과 관련 문서들은 시험 답지, 채점지, 합격증, 차첩까지 모두 남아 있어 과거시험의 절차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고, 울산 출신 유학자이기 한 박상진 의사 친아버지의 자료로 가치가 높다. 박시규의 시권은 과거 시험의 답안지 혹은 채점지로 박시규가 문과 전시에 응사해 제출한 것이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한 구절 내용을 가지고 부(賦)를 지었다. 시권 우측 피봉부(皮封部) 상단의 신원란에 이름, 나이(25세), 본관(밀양), 거주지(경주), 사조(四祖)가 기재돼 있다. 시권을 살펴보면 ‘용부석궐서민(用敷錫厥庶民)’라는 시제로 부를 지은 내용으로 ‘용부석궐서민’은 서경 ‘홍범(洪範)’ 9장에 나오는 구절로서, 임금이 오복을 거두어 여러 백성에게 내려준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박시규가 응시한 과거에서 부 부분에 주어진 제목이며, 박시규는 서경의 맥락과 부의 문체에 맞춰 자신의 의견을 기술했다.
시권 신원란 옆 여백에 ‘오천(五天)’이라 적힌 것은 일종의 관리번호로 천자자문과 숫자를 조합해 관리 편의를 도모했다. 피봉부 끝에 칼잡이 상·중·하 3곳이 있으며, 이곳에 띠지를 삽입해 호봉처리를 했다.
박상진 의사의 친아버지 박시규 관련 고문서는 기존에 기증한 박상진의 양부인 박시룡(1851~1930)의 1890년 경인 별시문과 을과 3인에 급제한 홍패와 함께 조선시대 말기에 두 형제가 문과에 급제해 관리 생활했다. 지금까지 양호한 상태로 잘 보관된 자료는 조선 말기 울산 출신 관료 자료와 박상진 의사 선대의 자료란 점에 그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성 울산박물관 유물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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