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함관령 해진 후에 아득히 혼자 넘어
안개 잦은 골에 궂은 비는 무슨 일고
눈물에 다 젖은 옷이 또 적실까 하노라
-<근화악부>(槿花樂府)

함관령 고갯마루가 얼마나 높고 험하면 연인의 이별 장면 배경으로 함관령이 자주 올랐을까. 고갯마루에 이제 막 헤어져야 할 두 연인이 손을 마주 잡고 서 있다면. 함관령의 뭇새들도 지저귀기를 멈추고 흰 구름마저도 갈 길을 멈출 것이다. 안게 자욱하던 골에 갑자기 궂은 비라도 내릴라치면 연인의 눈물 젖은 옷자락이 또 적실까 염려할 만도 하겠다.
함경남도 함흥시와 홍원군 사이에 함관령(咸關嶺)이라는 고개가 있다고 전한다. 예로부터 우리의 선인들은 높은 고개를 바람도 구름마저도 쉬어 넘는 고개라고 했다. 함관령이 얼마나 높으면 봄조차도 오르기 어려운 고개라고 시인들은 노래했을까.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시를 알고 시를 쓰는 시인이 많은 나라이다. 시를 쓰는 성숙한 시인의 세계를 넓혀가는 사랑이 주제가 될 때 또한 임 이별은 뜨거운 시의 소재가 된다.
시는 삶과 이어지지 않으면 공허하다. 아무리 좋은 해석이라도 시를 해석하면 할수록 시는 초라해지고 시는 더 누추해진다.
무명 시인들도 이렇게 시를 쓰는 민족이다. 문학은 삶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온몸으로 쓰야만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단순히 머리로만도 아니고 가슴으로만도 아닌 시를, 온몸으로 시인은 시를 쓴다. 그러나 필자는 39년 걸쳐 문단 활동을 해 왔지만, 아직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지난 시간은 모두 다 떠내려 보내고 다시 가슴으로 뜨겁게 시간을 익히고 싸늘하게 식혀서 더욱 냉정한 가슴으로 시를 쓰야 겠다.
봄 밭에서 봄날을 배경으로 시의 영토를 일구어 가야겠다. 따스한 시 밭을 일구어 깊이 한 시대 속에 넘쳐 오는 물결을, 시 꽃으로 출렁이고 싶다.
‘눈물에 다 젖은 옷이 또 적실까…’를 노래하고도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무명 시인도 있는데…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