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악산 오를 때는
독배 쪽 골짜기에서
꿩 한 마리가 울었다
모악산 내려올 때는
또 금산사 쪽 골짜기에서
한 마리 까마귀가 지성껏 울었다
이 찡한 봄날,
혼자 무엇을 하자니
무엇을 해도 서운타
그래서 서로의 울음을 벗겨주기로 한 것
꿩 한 마리가 밀어올린 길과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 보낸 길이
꼭 중간쯤에서 사이좋게 만나
진달래 꽃봉오리 쌀튀밥처럼 뽈갛게 부풀리고 있다.
고독한 존재끼리 교감할 때 꽃이 피어난다

춘분. 태양 빛이 적도에 직각으로 떨어져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이제 봄이 몸을 풀면서 다가와 본격적으로 농사일이 시작되는 때이다. 며칠 전 등산길에 능선을 지나며 아래를 보니 해토머리 지난 땅에 농부들이 엎드려 있었다. 희끗희끗한 농부의 등판이 근처의 희끗희끗한 매화 가지를 닮아 그대로 한 덩이 꽃숭어리다.
이런 봄을 시인은 새 소리에서 느낀다. 모악산은 ‘어머니 산’이란 뜻을 지닌 호남평야에 우뚝 솟은 큰 산인데, 이 산을 오르고 내리며 꿩과 까마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새들은 각자 제 혼자이니 고독하고 외롭다. 혼자는 무엇을 해도 신명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꿩 꿩, 까악 까악 목소리를 돋우어 짝을 부른다.
이들의 울음은 모악산 골짜기를 오르고 내리며 어우러져 ‘서로의 울음을 벗겨’주게 된다. 울음을 벗겨준다는 것은, 어울리면서 각자의 고독과 슬픔을 씻어주게 되었다는 뜻. 둘의 울음은 중간에서 사이좋게 만나 진달래 꽃봉오리를 부풀린다. 사람 사이도 그러하리라. 고독한 존재끼리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교감할 때 그 사이에서 ‘꽃’이 피어난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자연과 자연, 모두 ‘사이좋게 만나’ ‘뽈갛게’ 봉우리를 밀어 올리는 봄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