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각자가 누군가의 미인이다
각시네들이 여러 층이 오네 송골매도 같고 줄에 앉은 제비도 같고
백화원리(百花園裡)에 두루미도 같고 녹수파란(綠水波瀾)에 비오리도
같고 땅에 퍽 앉은 솔개도 같고 썩은 등걸에 부엉이도 같네.
그래도 다 각각 님의 사랑이니 개일색(皆一色)인가 하노라.
<해동가요>

바람 쓸쓸하게 불고 빗님도 추적추적 내릴 때가 있다. 귀밑에 백발이 남의 이야긴 줄만 알았을 때도 있었다. 삼시 세끼 혼자 물 말아 먹는 보리밥에 썩은 준칠망정 김수장의 이런 시조를 외면 혼자 슬핏 웃기도 한다.
제비같이 날렵한 여인, 꽃밭의 두루미 같이 품위 있는 여인, 푸른 물에 뜬 비오리처럼 예쁜 여인, 땅에 철퍼덕 앉은 솔개 같이 평범한 여인, 송골매처럼 날쌘 여인, 썩은 나무등걸에 앉은 부엉이처럼 특이한 여인, 이 모든 여인들은 누군가의 님이고 아내이고 누이다. 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는 것이다.
들에 핀 꽃들이 수만 가지 이름을 갖고 수만 가지 모양이 다르듯이 여인 또한 그러하다. 보면 볼수록 정이 드는 여자, 한 번 보고 난 뒤 두 번 다시 마주칠까 두려운 여자, 키가 작아 품에 안겨 좋은 여자, 키가 커서 시원스레 눈맛 좋은 여자, 앙증맞아 깨물어 주고 싶은 여자, 눈가에 주름이 애교인 여자, 말이 찰바당 같이 착착 올라붙는 여자, 어쩌다 한 번 스쳐갔을 뿐인데 눈에 삼삼 지워지지 않는 여자, 터질 듯 가슴 예쁜 여자, 별 잘난 데도 없는데 같이 있으면 마음 편해지는 여자, 보호해 주지 않으면 곧 넘어질 것 같은 여자, 온종일 밥 안 먹고도 그냥 같이 있고 싶은 여자, 한 번 마음 주면 평생을 받드는 여자, 철석같은 약속을 하고서도 헤어져 가는 길에 또 다른 약속을 하는 여자, 다시는 같이 밥도 먹고 싶지 않은 여자, 이유도 없이 가진 것 다 주고 싶은 여자, 낮의 노래보다 밤의 노래를 잘 부르는 여자, 남이 보기엔 그저 그래 보이는 데 유달리 금슬좋은 부부가 있다. 잘은 모르겠다. 발뒤꿈치가 예쁜 여자인지.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