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주 오랜만에 강물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아주 먼 과거에서 건너온 듯했다. 눈을 뜨니 조명이 눈부셨다. 가슴에 통증이 몰려왔다.
“깨어나셨군요.”
눈앞에 간호사가 서 있었다.
“여긴 어디죠?”
“병원이죠. 참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간호사 대신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나에게 달려든 것은 자동차의 전조등이었다. 전조등이 나타나고 아주 짧은 순간 가슴에 약간의 통증을 느낀 것까지는 생각이 났다. 고개를 돌려 좌측을 바라보았다. 누워 있는 우측은 벽이었다. 바로 옆의 침대는 비어있었다.
“여긴 응급실인가요?”
“그래요. 교통사고였어요. 사모님은 정말 운이 좋았어요.”
나는 운이 좋았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운이 좋았다면 옆좌석의 김 과장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간호사가 나가고 난 뒤 남편과 아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두 남자의 모습을 본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남편은 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내 품에 안기려다가 간호사의 저지를 받았다.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하니 너무 격하게 대하시면 안 됩니다. 늑골이 골절상태입니다.”
아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품에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남편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본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고에도 죽지 않고 살아난 기쁨의 빛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수심만 얼굴에 가득했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서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얼마나 놀랐느냐 던가 많이 아프냐는 정도는 물어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못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차는 많이 망가졌나요? 그리고 김 과장은요? 많이 다쳤나요?”
“지금 그런 걸 걱정할 때야?”
남편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나는 목소리가 풍기는 여운만으로도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차는 김 과장의 차였고 운전은 내가 했었다. 김 과장은 술이 덜 깬 상태였고 나는 정신이 말짱했다. 내가 특별히 운전을 잘못한 것도 없었다. 중앙선을 넘어온 화물차를 피한다고 본능적으로 우측으로 핸들을 꺾은 것밖에는 잘못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