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산불, 나무는 말이 없다
상태바
[경상시론]산불, 나무는 말이 없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04.28 0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중략)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되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하는 일이 없다.’

수필가 이양하 교수(1904~1963)가 쓴 <나무>의 서두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난 3월 21일 산청에서 시작하여 울산, 의성, 안동, 영덕에 이르기까지 영남지방을 피폐하게 만든 화마(火魔)는, 평화로운 숲을 이루며 묵묵히 서 있는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불태우고 많은 가축과 인명 피해를 남겼다. 이로 인해 천년 고찰인 의성 고운사(孤雲寺) 등 귀중한 문화재가 소실되었으며 4000채에 육박하는 주택 피해는 물론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에까지 불길이 근접하여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영남지역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인해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366만t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한다. 이는 중형차 약 3436만대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때 배출되는 양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구온난화를 더욱 가속하는 데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경북 산불만 서울 면적의 약 1.6배 크기 임야를 황폐화하고, 지난 30년간 통틀어 피해가 가장 큰 지역으로 집계되었다.

한 그루의 나무는 성인 4명이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고 1년에 최대 10㎏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고 한다. 숲은 온실가스를 감소시켜 지구온난화를 완화하고 미세먼지도 저감(低減)한다. 뿌리에 빗물을 저장하여 지하수 양을 조절함으로써 가뭄이나 홍수를 예방하고 수자원을 보호하는 동시에 피톤치드를 배출하여 심신이 피로한 현대인의 심리적 안정과 치유에 도움을 준다. 또 죽어서는 거름이 되고, 온돌방의 구들을 덥히거나 다양한 버섯을 자라게 함으로써 그 일생이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은 바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분별한 벌목과 자원의 수탈로 웬만한 나무들은 죄다 베였고, 남아있던 수목들도 6·25로 많이 훼손되어 벌거숭이 민둥산이 많았다. 그나마 머지 않은 지난날 ‘산림녹화’ ‘치산녹화’의 기치를 내걸고 식목일이나 육림의 날을 지정하고 조림사업에 박차를 가한 덕분에 우리의 산은 푸르름을 자랑하게 되었다.

필자도 중고등학생 시절에 교복 왼쪽 가슴에 ‘불조심’ ‘산림녹화’ 등의 표찰을 패용(佩用)하고 다녔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나무를 심어도 한 번의 실화(失火)로 산야를 잿더미로 만들고 지구를 병들게 하는 인재(人災)는 안타까운 일이다.

훼손된 숲이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산림 복구 비용이 ha당 5000만 ~ 1억원이 든다고 한다. 게다가 땅속 유기 물질을 원래대로 돌리고 토양 유실 방지, 수질 오염 방지 비용 등도 엄청날 뿐 아니라 생태계 회복에 최대 10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추산한다.

대기가 건조한 3월~4월, 나무를 심어야 하는 식목일을 전후하여 등산객이나 성묘객, 쓰레기를 소각하는 사람들의 불찰로 우리의 산천이 몸살을 앓지만,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나무는 이런저런 말이 없다.

이양하의 <나무>는 결말 부분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사람은 가다 장난삼아 칼로 제 이름을 새겨보고 흔히 자기 소용 닿는 대로 가지를 쳐가고 송두리째 베어 가곤 한다. 나무는 그래도 원망하지 않는다. 새긴 이름은 도로 그들의 원대로 키워지고, 베어 간 재목이 혹 자기를 해칠 도낏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의 현인이다…’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6)도시바람길숲-새이골공원
  • [정안태의 인생수업(4)]이혼숙려캠프, 관계의 민낯 비추는 거울
  •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문성해 ‘한솥밥’
  • 양산 황산공원 해바라기 보러 오세요
  • 울산 부동산 시장 훈풍분다
  • 추억 속 ‘여름날의 할머니집’으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