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국가신용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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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국가신용등급
  • 경상일보
  • 승인 2025.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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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지난 5월16일,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1단계 낮춘 Aa1으로 변경했다. 미국과 유사한 신용등급을 부여받은 다른 국가들 대비 높은 국채 이자 비율이 10여 년 유지되어 왔고, 고금리 환경에서 연방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과 재정적자 또한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신용등급 하향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시장에 미국 신용등급 강등 소식이 전해진 직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3bp 오른 4.48%에 거래되었고, 미국 장기채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거래가격은 1% 하락했다. 참고로 다른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와 피치는 이미 지난 2011년과 2023년에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하향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디스는 정부 재정정책을 수립·집행하는 미 행정부가 대규모 재정적자 기조를 반전시키는 데 필요한 조처를 하는 데 거듭하여 실패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대체 얼마나 큰 빚을 시장에 지고 있는 걸까? 우리나라와 달리 매년 10월1일에 시작하여 다음 해 9월30일에 종료되는 미국 연방정부의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현 회계연도 시작일인 2024년 10월1일 기준 미국의 재정적자는 1조500억달러(한화 약 1464조원) 였다. 앞으로의 전망도 부정적이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와 공화당이 주도하여 시행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금 감면 입법 가운데 하나였던 감세 및 일자리법(Tax Cuts and Jobs Act)이 계속 유지될 경우, 미국 정부에 향후 10년간 최소 약 4조달러의 재정적자가 추가될 것이라고 무디스는 예상하고 있으며,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미국 정부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4년 98%에서 2035년에는 134%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2024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46.1%이다.

국가신용등급 하향이 미국 시민들에게 미칠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대출금리의 상승이다. 신용 위험이 높아질 경우 대주가 이전보다 높은 이자로써 보상받고자 하는 금융시장의 원리가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내 30년 만기 주택담보부대출(모기지 론)과 신용 대출, 그리고 자동차담보부대출 금리 등 국채 금리와 상관성이 높은 금융 상품들의 대출금리는 상승하고 있으며, 이 기조는 장기간 지속되어(higher for longer)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 심리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서 이번 무디스의 발표는, 수입물품들에 대한 고관세 정책으로 인해 이미 국채 금리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 더해 미국보다 안전한 곳으로 투자처를 옮기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투자 매력도를 판단하는 중요 기준 가운데 하나인 금리 환경과 관련하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현재의 관세 정책이 성장률을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여 기준금리를 낮추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밝혀, 투자처로서의 미국 시장에 대한 전망이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 나라의 경제 정책과 시장의 평가는 이처럼 그 나라 안팎의 모든 이해 관계인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해외 투자가 더 이상 소수의 전문 기관만의 영역이 아니게 된 요즈음, 미국 신용등급 변경과 그로 인한 투자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는 심층적인 기사를 접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 후 나스닥이 전 고점을 회복하는 데 15년이 걸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빅 테크 기업들로 상징되는 미국 증시에 대한 기대는 견고하며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미국 시장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신뢰는 여전히 두텁다. 이와 대조되는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도 깊다.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악재에도 투자 환경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미국 시장처럼, 국내 시장도 실적으로 입증되는 좋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수익으로 보답받는다는 믿음이 뿌리내릴 수 있는 투자처로 그 인식이 바뀌길 바란다. 유통시장에 참가하는 주주가치 제고를 외면한 결과 자금조달시장으로서의 기능만 극단적으로 비대해진 현재의 불균형은 자본시장 선진화와 양립할 수 없다. 좀처럼 밝은 전망을 찾기 어려운 경제를 반전시키는 단초는 개별 산업 부문뿐 아니라 투자시장으로서의 한국에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믿는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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