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칼럼]소(訴)와 추(追)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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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주칼럼]소(訴)와 추(追)의 전쟁
  • 경상일보
  • 승인 202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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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면주 변호사

장미가 흐드러진 담장에 나붙은 대선 벽보는 심드렁하다 못해 짜증스럽다.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이래 평균 약 3년마다 선거를 치르다 보니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보다 반복되는 선거 레파토리가 지겨울 뿐이다. 대통령 탄핵의 여진 속에 치러지는 대선이라 논란이 많다. 그 가운데 유력 후보의 재판 문제가 국민을 가장 혼란스럽게 한다. 야당의 후보는 다섯 개의 형사재판 중이다. 이 중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만약 당선된다면 기존의 재판이 중단되는지, 유죄가 확정될 경우 대통령직이 상실되는지 등의 여부가 정리되지 않은 채 선거는 진행되고 있다.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받고 이의 신청을 한 선수가 올림픽 경기를 뛰고 있는 모양새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소추의 법적인 의미는 통상 공소장에 범죄사실을 기재해 법원에 재판을 요구하는 검사의 행위를 말한다. 대통령 재임 중의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한 범죄는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지 않음은 명백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기소된 재판의 중단 여부에 대해는 의견이 분분하다. 헌정사에 찾아보기 힘들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연구나 판례가 거의 없다. 통상은 진행 중인 재판은 새로운 소추로 볼 수 없어 중단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반면에 소(訴)와 추(追)를 사전적 의미로 분리해, 재판을 요구하는 행위인 소(訴) 뿐만 아니라 재판을 완수해가는 행위인 추(追)도 중단해야 한다는 이견이 있다. 야당은 당연히 후자의 입장으로 모든 재판이 중단돼 대통령직의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최종 해석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권한이기 때문에 야당의 입장대로 결론이 난다는 보장은 없다. 선거 후에도 이를 둘러싼 국민적 갈등이 심각해져 대선 2라운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사정으로 민주당은 자당의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입법을 무차별적으로 발의하고 있다. 여당은 자칭 강력히 맞서 소와 추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영 미덥지 못하다.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정지하도록 하는 법안은 법사위를 통과했고, 허위사실공표죄의 요건을 완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행안위에서 야당 단독 처리됐다. 대법관의 수를 14명에서 100명 정도로 늘리고, 비법조인도 대법관에 임명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국민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대해 헌법 소원 제기가 가능하게 해 사실상의 4심제를 허용하는 법안도 법사위에 논의 중이다. 야당 후보에게 유죄 판결을 한 대법원장을 대선개입 의혹으로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했다.

야당은 이러한 법안의 발의를 사법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 강변하고 있지만, 설득력은 거의 없다. 오히려 법안의 면면을 보면 자당 후보의 대통령직 유지를 엄호하거나 사법부에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짙다. 사법체계에 대한 정치적 목적의 졸속한 입법은 사법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해 삼권분립을 교란할 우려가 있다. 꼭 필요하다면 충분히 공론화해 전문가와 국민 여론의 수렴이 우선돼야 한다. 게다가 확실한 증거도 없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한 판사가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폭로는 사법 사찰을 의심케 하는 도를 넘는 사법부 압박이다.

현 야당 세력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주도해 왔고, 그 공로로 민주화 보상까지 받았다. 현대 민주주의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절대권력의 형성을 배제하는 삼권분립의 권력 구조하에 있음을 모를 리 없다. 혹시 5년짜리 대통령 권력에 취해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아무리 급해도 정치 권력의 창출은 민주적 헌법 질서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 범위를 넘어선 권력의 창출은 그것이 곧 내란이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 군부정권 하에서 민주 세력의 유행어이던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달버그 액턴 경의 말을 작금의 민주당에게 되돌려 줘야 할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신면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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