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여 못가” 경로당 텃세 老老갈등 심화
상태바
“눈치보여 못가” 경로당 텃세 老老갈등 심화
  • 신동섭 기자
  • 승인 2025.05.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일부 아파트 경로당에서 이용자들 간 불화와 텃세가 문제되고 있는 가운데 울산 울주군 한 경로당 입구에 65세 이상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울산 남구 달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인 80대 정모 할머니는 요즘 경로당 문턱을 넘지 않는다. 정씨는 “아파트에 나이 든 사람이 많은데도 다들 경로당 이용을 꺼린다. 아파트에 오래 산 노인들이 무리 지어 경로당을 독차지하고, 에어컨 리모컨도 숨겨둔다. 혼자 들어갔다가 어떻게 켜야 할지 몰라 그냥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두세 명이 들어가도 ‘언제부터 살았냐’ ‘여기 허락받고 들어왔냐’며 견제하고, 나가라는 식으로 눈치를 줘서 차라리 안 가는 게 속 편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26일 울주군 범서읍의 한 아파트. 경로당 입구에는 ‘아파트에 거주하시는 65세 이상 어르신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경로당 이용자 간 불화가 심해지자, 최근 울주군이 직접 부착한 것이다.

초고령사회의 도래에 따라 경로당은 단순히 노인들의 친목 도모와 휴식 공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소통과 문화공간으로의 변모가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경로당에서는 여전히 신입 회원들에 대한 텃세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

경로당 텃세는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켜 노노(老老) 학대와 정신적 상처, 폭력 사태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경로당이 ‘노인 고립’ 해소의 장이 아니라 ‘노인 고립’의 또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경로당 텃세는 자연부락보다 아파트에서 더 두드러진다. 아파트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오랜 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쥐면서, 새로운 입주자나 신입 회원에 대한 견제와 배척을 가하는 구조다.

노인들은 이런 갈등을 터뜨리고 해결하기보다 경로당을 가지 않는 방향으로 회피하기에 이런 문제를 자녀들이나 행정 당국이 알기는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울산 노인들의 경로당 이용률은 14.6%로 전국 평균(26.5%)을 크게 밑돌았다.

전문가들은 경로당 텃세가 도심형 경로당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유로 △폐쇄적 공간 구조 △노년층 내 위계 문화 △운영의 자치성·불투명성 △관리·감독 미흡을 꼽으며 경로당의 개방성 강화, 운영 투명성, 갈등 예방 교육, 프로그램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자연부락 경로당은 다들 오랫동안 봐온 사이지만, 아파트 경로당은 이사가 잦다 보니 사귐의 깊이가 부족한 것 같다. 게다가 경로당마다 특색이 있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화를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며 “경로당마다 항상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주기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대형 개발로 울산 해양관광 재도약 모색
  • [기자수첩]폭염 속 무너지는 질서…여름철 도시의 민낯
  • [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3)겉과 속은 달라-애니원공원
  • 아마존·SK, 7조규모 AI데이터센터 울산에
  • 장생포 수국 절정…한여름의 꽃길
  • 울산 첫 수소연료전지발전소 상업운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