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정의 달, 고독을 마주한 사회…생명을 지키는 일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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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정의 달, 고독을 마주한 사회…생명을 지키는 일선에서
  • 경상일보
  • 승인 2025.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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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건후 울산북부경찰서 화봉파출소 순경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날, 스승의 날이 이어지며 감사와 사랑이 넘쳐나는 계절이다. 거리에는 꽃이 피고 가족 단위의 나들이로 활기가 넘치며 사랑과 존경, 감사와 헌신을 기념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되는 달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시기가 오히려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경찰관으로 수년째 현장을 지켜온 필자에게 5월은 ‘가장 따뜻해야 할 달에 가장 많은 이들이 스스로 삶은 포기하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시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리고 2024년 국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수가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생명존중희망 재단과 통계청은 지난해 ‘고의적 자해’로 사망한 사람은 총 1만4439명으로 자살 사망자 중 남성은 1만341명, 여성은 4098명으로 남성이 2배 이상 많았다. 연령대별로 50대가 전체 사망자의 21.0%로 가장 많았고, 40대(19.0%), 60대 (16.5%), 30대(13.4%)가 뒤를 이었다. 이는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수치다.

우리는 매년 수많은 자살 시도 현장에 출동한다. 어떤 이는 조용히 유서를 남기고 떠나려 하고, 어떤 이는 다급한 신고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그 중 많은 이들이 ‘더 이상 혼자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 혹은 가족이 있음에도 고립된 이들에게 ‘가정의 달’은 외면당했다는 감정을 더욱 극적으로 자극하기도 한다.

최근 출동했던 사건 중 한 청년은 가족과의 갈등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마지막 순간, 112신고가 되어 구조되었고 가족으로 인한 우울 상태로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으나 필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 후 다시 살아볼 용기를 내겠다고 말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수많은 자살 신고를 접하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의 신고자는 살고 싶어 신고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 주었으면 좋겠고, 내 가족에게 내 상황을 알려줬으면 좋겠고,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을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신고를 한다.

우리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 있다. 그러나 자살은 단순히 현장 대응만으로 막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정신 건강, 사회적 단절, 경제적 위기, 그리고 무관심이 뒤섞인 복합적인 요인들이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우리는 사건 발생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에 울산경찰청과 울산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는 24시간 협업 체계를 운영하며 자살 위험군 대상자에 대해 상담과 모니터링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자살시도자의 112신고 이력을 기반으로 위기관리 대상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경찰관이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자살을 ‘나약한 선택’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버려야 한다.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 대부분은 사실 ‘살고 싶다’는 내면의 외침을 품고 있다. 사회가 그 신호를 먼저 포착하고 따듯하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용기 내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마디 건네는 건 어떨까. “오늘도 수고했어, 널 응원해, 사랑합니다.”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수 있다. 내가 용기 내어 내민 손이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가정의 달 5월 생명이 외면당하지 않도록 사회의 그늘까지도 따뜻하게 비추는 노력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삶이 힘들 때 당신 곁엔 경찰과 이웃이, 사회가 있고, 함께 손 내밀고 싶은 우리가 있다. “혼자가 아님을 기억해주세요.”

박건후 울산북부경찰서 화봉파출소 순경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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