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독서만세! 사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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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독서만세! 사람만세!
  • 경상일보
  • 승인 2025.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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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희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

험한 산길을 묵묵히 올라 마침내 도착한 정상에서, 기대했던 벅찬 기쁨이 아닌 허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여기가 아닌가 보다”라며 되돌아서는 장면은 개그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웃음 코드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웃을 수 없다. 오랜 시간 쏟아부은 노력에 대한 실망감과 자신을 향한 분노와 자책, 그리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뒤엉켜 내면 깊은 곳을 뒤흔든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나를 지켜보던 한 친구가 새롭게 길을 걸어야 할 나를 응원하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부제를 보는 순간, 마음속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행복하자고 그렇게 애썼는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는 허탈감과 ‘진짜 행복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갈망이 복잡하게 얽혔다.

<행복의 기원>은 인간의 삶을 어떤 숭고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감정 역시 추상적인 이상이나 대단하고 특별한 성취가 아니라,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진화한 아주 현실적인 감각이라는 것이다. 즉, 행복은 먼 미래에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이라는 글을 읽으며, 철학책에서 보던 행복을 과학책에서 다시 만나는 듯 선명했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전구를 가장 확실하게 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성공, 명예, 부유함을 떠올리지만, 이런 것들이 주는 행복감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금세 희미해지고 만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한 문장을 또렷이 건넸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 연결돼 있을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통해 비로소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는 이 통찰은, 책을 읽던 그 순간의 나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지난 5월부터 교육청에서는 하루를 책 읽기로 시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열렸다. ‘배움의 시간! 독서만세!’(독서로 만나는 더 큰 세상)에 참여하며, 나는 혼자가 아닌 ‘함께 읽는 힘’을 경험하고 있다. 교육청 내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매주 월·화·목 아침, ‘책마루’ 자율 독서 공간에서 짧지만 밀도 높은 아침 독서 20분이 진행된다. 혼자였다면 금세 멈췄을지도 모를 나의 독서가,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꿋꿋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바쁜 아침임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사람’이었다. 환한 공간을 정성껏 준비해주시는 분들, 이른 아침 묵묵히 책에 집중하는 동료들, 독서 후 함께 웃으며 사무실로 향하는 그 짧은 걸음 속에서 나는 하루를 새로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처음엔 ‘이 짧은 시간에 책 한 권이나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침에 읽은 몇 장이 퇴근 후, 주말까지 이어졌고, 꽂아두기만 했던 책 한 권을 다시 꺼내는 기쁨이 컸다. 책을 읽고 싶지만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분들도 지금 당장 책 한 권 들고 우리와 함께해 보시길. 우리와 함께 책을 펼칠 때, 당신의 ‘행복’ 전구도 함께 빛날 것이다.

김건희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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