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의 마라토너 손기정(1919~2002)이 생전에 마라톤 인생을 요약하며 남긴 어록은 “경기중 ‘출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길이었고 모든 곳을 달렸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릴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42.195㎞ 출발선에서 호흡조절과 함께 훈련된 기량을 통해 ‘앞만 보고 달린 결과’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는 의미다.
새 대통령의 출발선에서도 국정운영의 청사진이 일정 부분 투영될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취임 초 좌고우면 삐걱거리다 국정 동력을 상실한 전례도 많았다. 직전 윤석열 정부의 패착 역시 출발선부터 휘청거렸다. 화급하지도 않은 대통령실 이전을 국정 우선순위에 두고 무리하게 추진했는가 하면, 각종 의혹이 국정에 발목을 잡으면서 끝내 중도 추락했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출발선은 어떠한가?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실 출입기자 경험칙으로, 이 대통령의 취임식 날 긍정과 우려의 시야가 동시에 들어왔다. 긍정 시그널의 강력한 신호는 1호 행정명령인 비상경제TF 구성 및 회의주재였다. 특히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주요 기관 정책 실무 참석자 전원에게 대통령의 개인 전화번호를 전달했다. “전화로 직접 의견을 알려달라”고도 당부했다. 다만 언제까지, 어느 수준으로 경제를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목표는 확인되지 않았다. 첫 인선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4선 김민석 의원을 초대 총리후보자로 지명했다. 대통령실 요직에도 국회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채워졌다. 국민의 마음을 읽는 국정운영과 동시에 국회를 중시하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여야 정치권과 협치 성격의 오찬도 긍정 신호다. 대선 가도에서 사사건건 충돌했던 김문수 후보의 국민의힘과 이준석 후보의 개혁신당 등 7명의 당 대표가 참석했다. 제1야당 40대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통령 면전에서 쓴소리를 한 장면이 생중계됐다. ‘짠하게’ 다가온 이 대통령의 동선에서도 국민과 함께하는 서민형 대통령의 이미지가 부각됐다. 김혜경 여사와 함께 국회 청소 노동자들과 의회 방호 직원들을 찾아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이 대통령 가족의 삶이 청소 노동과 밀접했기 때문이었을까. 이 대통령은 20대 대선 후보였던 2022년 1월24일 성남 상대원시장 연설에서 “여기가 바로 이재명과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했던 곳”이라며 빈곤했던 어린 시절을 소환한 뒤 잠시 눈시울을 붉힌 적 있다.
이 대통령의 ‘감동 취임식’이 진행된 다른 한편에선 우려의 시각도 존재했다.
취임식 날 이 대통령이 ‘1호 당원’인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강행 법안 처리다. 국회 법사위 소위원회를 열어 국민의 힘이 강력 반발해 온 대법관 30명 증원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한 것. 본회의 처리 시점도 멀지 않은 기류가 감지된다. 대법관 증원이 그렇게도 화급한 현안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또한 역대 대통령의 취임식에 필수 초청 인사로 참석했던 주한 미국대사 등의 모습도 안 보였다. 일각에선 “한미동맹의 한 축인 주한미국 대사를 초청에서 제외했나”라는 뒷말도 나왔다. 다행히 취임식 이틀 뒤인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과 20여 분 통화가 이뤄졌다.이런 가운데 대야 강공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기류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윤 정부 야당 시절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해병 특검법 등 3대 특검법과 검사징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여기엔 검사 120명이 출동한다. 구여권 핵심 인사들에 대해 시쳇말로 ‘쑥대밭’의 신호탄으로도 비친다. 정치 풍운아 홍준표는 “곧 다가올 ICE AGE(빙하기)는 혹독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 출발선은 투트랙으로 읽힌다. 경제 회생책과 국민통합에 드라이브를 걸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대선 가도에서 공언했던 내란 종식의 연장선에서 전방위 사정 칼날이 작동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라고 했듯, 5년 임기 동안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달리는 국민 중심 ‘성공한 대통령’을 기대한다.
김두수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