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계는 우이동에서 총 4통의 사신 기록물을 남겼는데, 이 중 두 통은 발신연대가 1966~1974년으로 추정이 가능했지만, 두 통은 발신 연대 추정이 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네 통의 사신들은 집안 공사, 안부 인사, 수상 기념 인사 등의 내용이었다.
사신 ‘우이동 1’에서 난계는 “좋은 날씨입니다. 별고 없죠? 이번에 ㅇㅇ한 염려(念廬) 감사(感謝)합니다. 퍽 요긴했읍니다. 조그만은 家設을 근 한 달 전부터 하고 있듭니다. 마치고 기별하겠읍니다. 한 번 오십소.(꽃이 피기 시작했읍니다) 내내 총총 우이동 오생 조연현 형(牛耳洞 吳生 趙演鉉 兄)”이라고 적었다.
박종석 평론가는 “오영수 자신의 집안을 새롭게 단장하면서까지 소식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아 조연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사신을 보면 사무적인 서열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난계는 ‘현대문학’ 편집장 이전부터 조연현이 주간으로 있었던 ‘문예’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신 ‘우이동 2’에서 난계는 “積阻(적조)했읍니다. 별일 없으시죠. ㅇㅇㅇㅇ해 겹벚꽃이 한 무렵이겠읍니다. 소풍 겸 한번 나오십소. 한번 볼만합니다.(日曜日은 너무 번잡해서 피(避)하시고)”라고 썼다.
박 평론가는 “사신에서 언급된 겹벚꽃은 자연이요, 자연은 오영수의 삶과 문학에 필연적인 관계로 보인다. 이 또한 그의 작품과의 상관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라며 “인간적인 유대 관계에서 벚꽃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자연 탐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단문 속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음은 그의 단편 소설의 문체론적 특징을 볼 수 있는 연구 또한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타 사신 기록물로는 3통의 사신을 남겼는데, 이 중 ‘사신 1’에는 “오늘 원고(原稿) 보았읍니다. ㅇㅇ히 가셨다기 맘이 놓입니다…來日 떠났기에 불야불야 이 글을 적읍니다. 兄이 계시던 집에 편지가 와 있기에 개봉(開封)해 보냅니다.”라고 적혀있다.
박 평론가는 “난계가 ‘현대문학’ 편집장으로서 수많은 문인과 교유(交遊)를 짐작케 하는 사신”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느 문인과 교유했는지 파악은 어려우나 김구용, 이한직 등이 거명되는 것으로 보아 이들 사이의 일화 정도는 남았으리라는 정도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신을 통해 “오영수와 관계된 문단 주변을 파악할 수 있고, 문단 파동 사건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사신이다”라고 덧붙였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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