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바다는 조용하다. 5월이 지나도록 태풍이 단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다. “올여름은 태풍이 없어서 평온할 것 같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한다. 정말 그럴까? 태풍은 단순히 바람과 비를 몰고 오는 골칫거리가 아니다.
태풍은 적도 부근의 뜨거운 열을 위도로 옮겨주는 지구의 자연 온도조절 장치이다. 그 태풍이 조용하다는 건, 열이 그만큼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쌓이고 또 쌓인 에너지는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잦은 태풍은 피할 수 있어도, 한 번에 찾아오는 괴물 태풍은 피하기 어렵다. 태풍이 없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27℃를 넘으면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지금 필리핀 해역은 30℃를 웃도는 바다로, 태풍의 씨앗이 자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조용한 바다라고 해서 안전한 바다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11일) 오전 9시 올해 첫 번째 태풍 ‘우딥(UDIT)’이 발생했다.
전 세계 많은 기상예측모델들은 처음에는 한반도 서해상을 태풍 경로로 지목했지만, 베트남 부근으로 방향을 틀은 우딥은 한반도로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잠시 안심하라는 뜻일 수 있지만, 진짜 변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딥과 함께 도사리고 있는 열대해상의 열대요란들은 뜨거운 수증기를 한반도로 공급하며 정체전선을 밀어 올렸다.
오늘(12일) 제주도는 평년보다 일주일 빠르게 장마가 시작됐다. 뜨거운 해수면에서 공급된 수증기와 북쪽의 찬 공기가 충돌하면, 단순한 장맛비가 아닌 극한호우로 이어질 수 있다.
태풍은 비켜간다고 끝이 아니다. 그 여운은 장마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그 장마는 폭우를 동반한 재해의 문을 열 수 있다. 예사롭지 않은 날씨의 시작이 여기 있다. 태풍이 늦게 오고, 적게 오는 해는 늘 있다.
1998년, 2016년엔 7월에야 첫 태풍이 발생했다. 올해도 그에 가까운 패턴이다. 하지만 늦게 시작된 태풍은 종종 더 길고 더 강하게 이어졌다.
평온은 언제나 반대로 뒤집힐 가능성을 안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부터 태풍 강도 체계를 정량화된 5단계 수치 체계로 바꿨다. 기존의 ‘약, 중, 강, 매우 강’ 같은 표현 대신, 이제는 강도 1부터 강도 5(초속 54m 이상)까지 숫자로 구분된다. 보다 정확하게, 보다 객관적으로 태풍을 판단하기 위함이다.
기상예보는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발맞춰야 할 것은 국민 개개인의 기상감각이다. 날씨가 달라지면, 일상도 달라지는 만큼, 정확한 기상예측과 예보는 계속되야 한다. 그리고 대비는 선택이 아닌,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의 여름! 이제 진짜 시작이다.
맹소영 기상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