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62)]끝이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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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62)]끝이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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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어린 소년공이 역경을 헤치고 성장한 이야기에서부터 노동운동에 젊음을 바친 사람의 이야기까지 절절하게 살아온 인물들의 생애를 비교 평가하는 일로 온 국민이 극심한 혼돈을 겪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보다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대중의 언어가 때로는 너무 날카롭고 무서웠다. 상식을 벗어나는 실언으로 한 사람의 인성이 통째로 매도되는 것을 보면서 말의 무게를 새삼 느끼기도 했다. 정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업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부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끊임없이 평가하고 반성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가 한 편의 무난한 이야기로 마무리되길 염원한다. 감동스럽고 아름다운 전기는 못되더라도 자기 나름의 의미가 있는 소박한 이야기로 완성되기를 바란다. 변화가 왕성한 젊은 날부터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끝자락에 이르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작은 의미라도 부여하고 싶은 것이 평범한 사람의 욕심이다.

그래서 노년에는 마음속으로 자서전을 쓰는 시간이 늘어난다. 새로운 경험을 얻고 새로운 이야기를 보탤 영역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이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그 소박한 이야기 속에도 남들이 알 수 없는 가치나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생각한다. 또 스스로 내세울 것이 하나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자녀들이 주는 기대와 긍지에서 삶의 보람을 찾아내기도 한다. 다음 세대로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노년의 특성이자 권리이다.

한 개인이 쓰는 자서전의 마지막 장에는 항상 자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노년이 돼서도 사회적 활동을 지속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신의 성취가 주는 기쁨이 자녀의 성공이 주는 즐거움이나 보람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부모의 성공은 자녀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식의 성공은 부모의 업적이 된다는 말은 명백한 사실이다. SNS에 올리는 자신의 사진이 어느 시기가 되면 대부분 손주 사진으로 바뀐다. 이것을 보면 노년의 기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먼 곳으로의 여행보다 더 즐거운 일이 손주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은 주위에 흔하다. 여행지에서의 멋진 사진을 보내지는 않아도 손주가 놀고 있는 뒷모습 사진을 보내는 친구도 있다.

자서전의 마지막을 힘들게 하는 요소도 많다. 노인들은 자신이 이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되고 짐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한다. 이러한 불안은 사회를 움직이는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과 연결돼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이 오히려 우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외형적으로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사람도 무력감이 주는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전국 각지에서 건설되고 있는 파크골프장도 이러한 정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황톳길에 불던 바람이 이제는 파크골프장으로 옮겨 가고 있다. 두 가지 시설의 공통점은 모두 천천히 걷는 것이다. 그리고 주요 고객이 노인이라는 사실이다. 황톳길을 걸으며 불면에서 벗어났다는 사람도 많다. 친구들과 파크골프를 하면서 공황장애 약을 끊었다는 친구도 있다. 마음의 병은 몸을 통해 고쳐야 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인간의 생애가 지나가는 어느 시기에나 마주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짓수가 늘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노년에는 채우고 늘이는 일보다 버리고 벗어나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평생 떨치지 못한 작은 습관 하나라도 줄이거나 벗어나야 한다. 먹고 마시는 감각의 만족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고 나니 삶이 가벼워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노년의 지혜를 실천하는 이들이 존경스러워 보인다.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언젠가 몸소 실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야 자서전의 끝부분을 가볍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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