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취미 전국시대. 수많은 놀 거리와 볼 거리가 넘쳐나는 2025년, 삶에서 일을 뺀 값을 어떻게 셈하는지에 따라 고정된 일상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르는 변수가 탄생한다. 여러 파벌이 나뉘어 있어 자신에게 맞는 진영을 찾으면 된다. 그중 현재 전성기를 누리는 쌍두마차로 독서와 야구를 꼽을 수 있다.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의 공통점을 일주일 간 눈대중으로 연구했다. 우선, 물리적인 진입장벽이 낮다. 방송을 틀거나 도서관에 가면 별다른 장비 없이 즐길 수 있다. 다음으로, 문지기를 조심하라. 입구에서 손짓하는 표지나 구단 이미지에 혹해 들어간 순간 문지기(작가, 등장인물, 선수, 감독)가 출구를 봉쇄한다. 마지막으로, 인원 제한이 없다. 퇴근 후 과자를 늘어놓고 오롯이 또는 휴일에 치킨을 앞에 두고 여럿이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어엿한 성인이 처음부터 진도를 밟기란 쉽지 않다. 이미 다 배운 토대에 요령을 붙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 탐험이란 동화와는 사뭇 다르다, 마치 교단이 그랬듯. 친근한 교사가 되고 싶지만 선을 긋지 않으면 학급이 혼란해진다. 유연한 교사를 꿈꾸지만 동요하지 않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우습지도 무섭지도 않기 위해 여전히 수련 중이다. 좋은 점은 하다 보면 방향이 생긴다는 것.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익히면 뜨게 되고 두 발을 뗄 즈음엔 원하는 레인으로 물살을 가르게 된다.
지난 스승의 날 아침, 제자의 편지가 도착했다. 제목은 ‘나의 울릉도’.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무리 짓는 아이들을 보며 홀로 독도처럼 있었는데, 울릉도가 내 곁에 있어주었다.’ ‘독도 같던 나를 지켜준 울릉도 같던 선생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시 제목으로 돌아갔을 때 완성되는 완벽한 편지였다.
학생이 좀 더 크면 답례로 소설 ‘섬에 있는 서점’을 추천하고 싶다. 섬에서 하나밖에 없는 서점의 주인 피크리는 딸 마야를 입양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홀로된 섬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인간은 홀로된 섬으로 있는 게 최상은 아니다’. 궂은 날씨 탓에 때론 무인도가 되지만 해무가 걷히고 나타난 이웃 섬을 보며 혼자가 아니었음에 위로받는 과정이 성장 아닐까. 이상 교사 울릉도의 소견이다.
성장은 계단형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곧은 선에 권태가 올 즈음 터럭만 한 변화가 나타난다. 다행인 건 어느 한 점에서 시작해 단계마다 임무를 완수하면 베이스캠프가 나타난다는 사실. 이때 취미는 지점 간 거리를 좁힐 힘을 주는 ‘부스터’이며, 무작위로 고른 상자 속에 든 선물 같은 ‘아이템’이다. 겹겹이 눌린 하루의 압력을 낮추며 달궈진 일상의 온도를 식혀 삶의 부피를 늘리는 일. 월요일마다 어김없이 승급전에 오르는 전사에겐 없어선 안 될 파란 물약이다. 초보 이용자로 교단에 접속한 지금, 털털한 나침반으로 빈 지도를 가늠하고 있다. 다행히 그늘막에 앉아 읽을 책 하나는 챙겼다. 당신의 파란 물약은 무엇인가?
배상아 복산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