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1장 만남 / 보부상 서신 1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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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1장 만남 / 보부상 서신 1호(9)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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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울산 무룡산과 주변 일대에서는 왜군과 의병 등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편소설 <군주의 배신>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무룡산에서 내려다 본 태화강 전경. 울산시 제공

국화와 천동은 서로를 쳐다보며 조용히 웃었다. 둘 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없었다. 생면부지의 사람 앞에서 이렇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이었다. 긴장이 풀리고 배가 부르자 두 사람은 정신없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튿날 동틀 무렵, 천동은 이미 일어나서 무룡산 정상에 있었다. 오늘따라 새벽하늘이 맑아서 태양은 정월 대보름의 달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고 있었다. 천동은 새벽에 바다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게 너무 좋았다. 오늘도 그는 마음을 비우고 검술수련에 정진했다. 네 식경 만에 수련을 마친 그는 이미 수면 위로 완전히 솟아오른 태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무는 자신의 품으로 날아든 새를 쫓는 법이 없다. 지금 자신의 품으로 날아든 국화가 마치 한 마리 새 같은 생각이 든다. 나이도 자신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고 신분의 차이 때문에 가까이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여인이지만, 그래도 이 험난한 전란의 와중에서 갈 곳조차 없는 그녀를 강제로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자신에게 특별한 유익은 없다. 아니, 어쩌면 양식만 축내고 마음도 피곤해질지 모른다. 또한 언제가 되었든 그녀 스스로 떠난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적어도 이별의 순간까지는 편히 있다가 가게 해주는 게 자신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 모든 선택은 그녀에게 맡기자. 비록 잠시의 인연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할 도리는 해야 하니까.’

그랬다. 그렇게 해야 정말 자신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물론 세간의 이목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혹시라도 양반이나 고자질 잘하는 그 집 하인이라도 동굴에서 함께 생활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필시 관아에 고발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금 이곳은 사람의 왕래도 거의 없고, 동굴집은 사람들이 발견하기 힘든 곳이다. 거기다가 위장도 잘 되어있다.

의지할 가족이라고는 없는 그녀가 혼자서 사람들 속으로 간다면 늑대무리 속에 던져진 토끼의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조선은 삼강오륜을 중시 여기는 유학의 나라지만 그건 임진란 전의 얘기고 지금은 임금에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인륜이 무너진 상태이기에 그녀의 안전은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천동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자신의 인생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방황 아닌 방황을 하는 그가 남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헷갈린다. 감정이 없는 석상처럼 살아온 그였다. 그에게 있어서 감정은 사치였다. 전란 중이라서 산다는 것이 우선이고, 살아낸다는 것이 대견하게 느껴지는 사고무친의 고아이기에, 그는 자신의 감정 따위는 죽이면서 사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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