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았어, 그럴게.”
천동은 망태기와 호미를 들고 앞장서고 국화는 졸래졸래 뒤를 따랐다. 긴장을 해서인지 아니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국화는 여러 번 넘어질 뻔했으나 그때마다 천동이 다정하게 붙잡아주었다. 가을 산에는 아직까지 먹을 게 조금은 남아있었다. 머루는 쭈글쭈글 마른 상태였고 산사과도 할아버지의 이마를 닮아 있었다. 그렇지만 전혀 먹지 못할 상태는 아니었다. 지금의 그들에게는 그것조차 눈물 나게 고마운 양식이었다.
천동이 기박산성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보이는 앞산이 삼태봉입니다. 그 아래 산 중턱 쯤에 건흥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스님이 그러셨어요. 여기에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
“그런데 그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 말속에 담긴 진의가 따로 있는 것이지.”
“그냥 생명은 다 소중한 거다. 뭐, 그런 거 아닐까?”
“그런 거군요. 그동안 괜히 고심을 했네. 정말 많이 생각해봐도 결론이 잘 안 나는데, 어떻게 누님은 금방 알아들어요? 내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책에서 얻는 지식도 있지만 살면서 배우는 지식도 있으니까. 그런 건 나이를 먹어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 내가 나이 먹은 티를 너무 내는 건가? 나이 먹은 게 자랑은 아닌데….”
“아니에요.”
천동은 그냥 대답해도 되는데 손사래를 쳐가며 부인했다. 국화는 그 모습에 속으로 쿡쿡거리며 웃었다. 덩치는 산 만해도 아직 어리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산 곳곳에 사람들이 이미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꽤 오랜 시간 산 중턱을 뒤졌지만 더덕 네 뿌리, 도라지 다섯 뿌리 캔 것이 전부였다.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칡을 발견해서 두 식경 동안 땀을 흘린 결과 남자 허벅지만큼 굵은 칡을 캘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동굴집에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돌아왔다.
등잔불을 밝힌 뒤에 국화는 저녁을 준비하고, 천동은 칡을 잘게 잘라서 동굴의 한쪽 구석에 펴서 널어놓았다. 좀 전에 캐 온 더덕구이를 반찬으로 해서 저녁을 먹었다. 식후에 차까지 마시고, 다시 둘만의 시간이 되자 어색한 분위기가 동굴집을 무겁게 만들었다.
국화에겐 이런 분위기를 깰 만한 아무런 무기가 없는데, 그건 천동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천동은 책 읽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말없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가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무료해진 국화는 졸고 있었다. 천동은 그런 국화를 자리에 편하게 눕히고 불을 껐지만 좀처럼 쉽게 잠들지 못했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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