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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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를
  • 경상일보
  • 승인 2025.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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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며칠전 일이다. 호흡기내과 선생님은 밤 9시가 다 된 시간에도 병원에 계셨다. 방금 본 환자에 대한 걱정을 하셨는데, 병명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고 정황상 자살을 시도한 듯 했다. 최근 들어 이런 환자들이 간혹 오긴 하는데 이분은 울산 지역민이 아니었다. 거주지 근방에 받아주는 곳이 없어 이곳 울산병원 응급실에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은 2차 종합병원으로는 드물게 호흡기내과 의료진 3인이 근무하고 있다. 호흡기질환에 대한 대처능력이 상당히 높은 편으로, 얼마전 국가에서 시행한 폐렴적정성 평가에선 울산지역 병원 중 유일하게 5개 지표 전부 만점으로 1등급을 획득했다.

그런만큼 다양한 환자가 많이 오는데 근래엔 위와 같은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들을 간혹 보게 된다. 얼마전 설치된 고압산소치료기 때문이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치료원리는 이렇다. 모두가 알 듯 인간은 산소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산소는 체내에 들어오면 혈액에 있는 헤모글로빈이라는 철분 성분의 분자와 결합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달되는데, 유기물이 그을음 등을 내며 타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는 헤모글로빈에 산소 대신 먼저 결합해 이 과정을 방해한다. 그래서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면 산소부족으로 오래지 않아 의식을 잃고 뇌에 손상을 입게 되는데 이게 일산화탄소 중독이다.

연탄사용이 드물어진 요새는 일산화탄소 중독이 화재 재해 현장을 제외하면 위의 환자처럼 의도적인, 즉 자살시도 현장에서 꽤 많이 발생한다. 치료를 위해선 고농도의 산소를 체내에 많이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입하는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하고, 울산병원에는 울산시의 지원에 병원 자체 예산을 투입해 업그레이드하여 도입한 지역 최고 성능의 고압산소치료기가 있다. 치료는 호흡기내과에서만 하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1차 응급 대응 후엔 호흡기내과가 넘겨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런 환자들은 여러모로 부담스런 부분들이 있다. 상태에 따라 중환자실에서 안정을 찾은 후 산소치료를 할 때도, 바로 시행할 때도 있는데 현재 병원에 있는 고압산소치료기는 1인이 아닌 다인용으로 정규시간에는 다양한 증상의 환자들이 최대 8인까지 들어가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시간이 1시간씩 되기도 하는데, 이럴 때 일산화탄소 중독환자를 응급치료 하려면 8인 전부가 중간에 치료를 중단하고 나와야한다.

응급상황을 이해해 주시는 환자분들도 있지만 당뇨발, 화상 등 중한 질환을 가진 환자분들도 많기에 마냥 너그러운 이야기만 하시진 않고 그런 민원은 전부 병원 종사자들이 어쩔 수 없이 감당하게 된다. 환자성향의 문제도 있다. 자살을 시도해 의식을 잃고 왔기에 깨어났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모르며, 환자의 마인드도 많은 경우 통상과 다르게 병원에 오기까지 도와준 주변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잘 없고 병원에 와서도 치료에 비협조적일 때가가 많다. 이 역시 병원 종사자들에겐 큰 부담이다.

그날 밤 호흡기내과 선생님과도 이런 이야기를 얼핏 나눴다. 상황을 비관하려면 정말 끝이 없겠지만, ‘뭐 어쩌겠어요’ 한마디로 정리하신 후 발걸음을 옮기셨다. 궁금함에 조용히 따라갔고, 다른 지역에 있는 보호자와 통화하며 환자 상태 및 치료 과정을 덤덤히 설명하시는 모습을 멀리서 한동안 보게 되었다.

이럴 때 간혹 병원이 가고 있고 가야 할 방향이 어렴풋이 잡히곤 한다. 독자들께선 모든 의사라면 무슨 환자가 앞에 있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게 당연하다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중환자를 꺼리지 않는 의사를 만나는건 큰 운이다. 병원 입장에서도 그런 의사와 함께 하는건 큰 행운이다. 다행히 그런 의사들이 필자가 일하는 곳에는 꽤 많다. 그렇다. ‘뭐 어쩌겠는가’ 이 말이 답일 것이다. 일이라는건 누구에게나 업이자 복이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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