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중대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종사자의 안전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법의 시행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안전관리자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관련 자격증 취득 열풍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2024년 국가기술자격 통계 연보에 따르면 산업안전기사와 산업안전산업기사 응시자 수가 역대 최고치다. 특히 산업안전기사의 경우 2022년 5만4500명에서 2023년 8만253명으로 응시 인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법적 규제가 강화되는 것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목격된다. 사업장의 잠재적 위험(Hazard)을 식별하고 평가하여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실질적인 안전 역량’, 즉 위험성 평가, 공학적 안전 대책 수립, 인간공학적 분석 등 전문적인 안전 엔지니어로서 안전관리자 역할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낮은 실정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안전관리자를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선임 제도를 준수하기 위한 ‘면허를 가진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과태료 부과 등 처벌을 면하기 위해 산업안전 관련 법규 이행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데 급급해 있다.
안전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기사와 산업안전산업기사 자격증이 필요한데, 경영학과, 조경학과, 외식경영학과 등 안전 분야와 학문적 유사성이 크지 않은 전공 졸업자도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 자격 취득 후 안전관리 및 사고 예방을 위한 깊이 있는 역량 검증 없이 안전관리자로 취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안전관리자의 역량을 법에 의한 안전 준수사항을 지시하고 확인하는 단순 관리자로 인식하게 하는 등 단순히 자격증 하나면 충분하다는 인식을 낳을 우려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최소한의 법적 기준일 뿐이다. 우리 사업장을 진정으로 안전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숨어 있는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평가하여 뿌리부터 뽑아내는 능동적인 안전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의 자율안전경영시스템 사례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법보다 훨씬 강화된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안전관리가 기업문화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법만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업장의 안전한 환경을 위해 잠재 위험을 식별하고 평가하여 위험을 근원부터 제거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할 때이다.
더욱이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산업현장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드론 등 첨단 기술의 도입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위험 요소를 발생시키며 안전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관리자가 단순히 현장을 발로 뛰며 관리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해진 작업 환경 속에서 첨단 안전 시스템을 이해하고 새로운 기술에 따른 위험을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이 절실해졌다.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교육현장에서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울산폴리텍대학은 전국 40개 폴리텍대학 캠퍼스 가운데 최초로 안전학과를 신설했다. 안전의 기본 위에 AI기술을 접목한 AI산업안전시스템과로, 미래형 안전전문가를 양성하고자 한다. 수업은 안전관리자가 갖춰야 할 법적인 과목을 기초로 하되, AI 관련 프로그래밍과 재난4족보행로봇, 협동로봇, 산업용사물인테넷 등 첨단 기술을 습득하며, 위험성 평가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직접 실습하며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도록 지도하고 있다.
안전관리자는 단순히 자격증 취득만으로 일반적인 안전관리 능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현장의 다양성과 빠르게 변화하는 위험 요인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엔지니어에 버금가는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법적 준수를 넘어, 우리 사업장의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안전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갖춘 안전관리자를 적극적으로 양성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학생들이 미래 산업현장에서 ‘진짜 안전’을 만들어가는 핵심 인재, 이 시대의 ‘안전 엔지니어’로 성장하도록, 우리 교육현장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해야 할 것이다.
이정일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AI산업안전시스템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