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1장 만남 / 보부상 서신 2호(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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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1장 만남 / 보부상 서신 2호(14)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7.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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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울산 무룡산과 기박산성, 농소 일대에서 왜군과 의병 등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편소설 <군주의 배신>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관문성 전경. 울산시 제공

김 초시의 악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천동이 아비가 어렵게 장만한 밭 세 두랑도 빼앗아가고, 집도 태워버려서 거처가 없어진 어린 천동은 하는 수 없이 거지 움막에서 자라게 되었다. 마루아저씨는 거지패 왕초에게 잘 봐달라고 수시로 곡식을 사다가 주었다.

거지 움막에서 자라던 천동은 왕초의 특별한 배려로 열두 살 무렵부터 그곳을 나와서 혼자서 살았고, 마루아저씨는 왜군에게 끌려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천동을 돌봐 주었다. 천동에게 마루아저씨는 친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루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천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마루아저씨가 재작년에 왜군에 의해서 끌려가시고 소식이 끊어졌다. 아저씨를 잡아간 왜군에 대한 원망과 마음속으로 의지하던 마루아저씨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는 요즘도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그런 까닭에 그는 일반 의병들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전투에 참여했으며, 천사장 이눌 장군은 백 명이 넘는 왜병과의 전투에만 그를 불렀다.

지금 이 나라에는 왜군에 부역하는 조선인의 숫자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은 왜군의 길잡이 역할도 해주고, 왜군에게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장사를 해서 이문을 남기는 보부상들은 두 패로 나뉘어져 있다. 왜군의 길잡이 역할과 정보를 제공해 주는 보부상 무리들과, 난리 중에 장사가 안 되고 손해를 입어도 관군과 의병진영에 적극적으로 물자를 공급해 주는 자들이 그들이다. 또한, 양반 사대부들의 수탈과 멸시에 진저리를 치던 양민과 천민들은 주로 전투를 하는 왜군진영에 적극 가담하여 동족인 조선인의 가슴에 화살을 날리고 조총을 쏘아대고 있다. 지금 서생포의 왜성을 비롯한 남해안의 왜성에 웅크리고 있는 왜군의 열 중 서너 명은 반드시 조선군이다. 실로 통탄할 일이다.

1592년 5월 주상은 윤두수에게 ‘적병이 얼마나 되는가? 절반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하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을 정도로 상당수의 백성들이 조선과 사대부에게 등을 돌렸다. 장예원과 형조를 불태우고,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을 불태운 것도 왜병이 아닌 조선의 백성들이었다. 이렇게 궁궐을 불태우고 도주했던 백성들이 얼마 후에 다시 돌아와서 왜군이 장악한 도성에서 시장을 열고 적들과 뒤섞여서 장사를 했다.

왜적들이 한양을 버리고 남하할 때까지 도성 안의 백성들은 그들이 발생한 신분증으로 살았었다. 이것은 많은 백성들이 조선이 아닌 왜국의 백성으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왕 이연과 양반 사대부들의 행위가 용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 대대로 터 잡아 살아온 백성들이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옥좌와 권력에만 눈이 먼 주상과 사대부들의 꼬락서니를 보면, 사화동을 닮은 친왜 부역자들에게 돌을 던질 힘마저 사라진다. 수많은 백성들이 부역자로 나선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와 사대부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삼봉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만약 임금이 백성의 뜻을 어기면 백성은 임금을 버린다’고 경고했는데, 이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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