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은 참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도 좋아 보이고, 산세는 아름답고, 너른 들과 맑은 강물이 있는 지상낙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말도 할 줄 아십니까?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선말로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부르는 명칭을 빌리면 나는 기리시탄 신자입니다. 저 하늘에 계신 주인을 믿는 것이니 한자어로 굳이 표현한다면 천주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천동은 오늘부터 나에게 기리시탄의 교리에 대해서 배울 것입니다. 고니시 장군이 이끄는 부대의 깃발 문양이 열십자 모양인데, 기리시탄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서양신부는 통역까지 대동해서 열심히 천동에게 기리시탄교의 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하였다. 많은 내용들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사랑과 평등, 구원, 평화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천동이 아는 한 왜국도 조선과 다름없이 소수의 귀족과 다수의 평민 또는 천민들로 구성된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이웃나라인 조선을 침공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인명에 대한 살육이 벌어지고, 약탈과 방화, 아녀자 강간 등은 전쟁의 부속품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왜병들에게 살육당하는 조선인들은 대부분 농민이나 노비, 백정 등의 천민들이고 양반들은 이런저런 핑계와 구실로 병역을 회피하기 때문에 전란 중에도 죽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고니시가 흰색의 나무 십자가를 앞세우고 기리시탄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벌인다는 전쟁의 희생자들은 그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불쌍한 조선의 농투성이들이다.
천동이 지금까지 지켜본 그들의 행동과 세르페데스가 전하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일치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내 천동을 괴롭혔다. 기리시탄의 교리라는 것이 얼핏 들으면 참 좋은 것이지만 정말로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현실과 신부님의 말씀이 너무 달라서 이해가 안 됩니다.”
“처음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이제 겨우 시작한 것이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마세요. 삼칠 일만 교육받으면 어렴풋하게나마 아시게 됩니다. 그때쯤 영세를 받도록 합시다. 내가 조선인들에게 영세를 한 숫자가 이천 명 가까이 됩니다. 나중에 내가 기리시탄교를 잘 믿는 조선인을 소개해 주겠습니다. 모자라는 것은 그분에게 설명을 들어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잘 될 거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세요. 천동도 반드시 천국백성이 될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신부님! 영세를 받았다는 이천 명의 조선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오늘은 이만 됐으니 돌아가세요.”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