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3장 / 고니시 유키나가의 십자가 군기(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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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3장 / 고니시 유키나가의 십자가 군기(39)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9.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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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울산 무룡산과 주변 일대에서는 왜군과 의병 등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편소설 <군주의 배신>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무룡산에서 내려다 본 태화강 전경. 울산시 제공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천동은 막사 밖으로 나갔다. 잠시 생각에 잠기며 느릿느릿 걷고 있는데, 비명과 함께 웃통을 벗은 여인이 젖가슴을 출렁거리며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뒤에 무사인 듯이 보이는 사내가 여인을 쫓아가서 단칼에 목을 베었다. 여인의 목이 몸과 분리되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마지막 말은 ‘엄마’라는 단어였다.

천동은 끔찍한 광경과 ‘엄마’라는 단어에 몸과 정신이 얼어붙어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여인을 베어 버린 무사는 천동을 돌아보더니 칼로 그의 목을 치려는 동작을 하다가 멈추고는 뭐라고 한 마디 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천동은 칼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 관계로 대항 한 번 못해보고 하마터면 목이 잘려질 뻔했다.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천동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여전히 잠을 못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순식간에 옷을 입은 천동은 하나코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막사 밖으로 뛰어나갔다. 왜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선군이 쳐들어 온 거라는 직감에 천동은 최대한 빨리 고니시군의 진영을 빠져나갔다. 이곳에 들어올 때 봐두었던 지형들을 기억해 내며, 그는 조선군의 후미로 가는 길을 택했다. 천동은 가능한 한 험준한 곳을 택해서 앞으로 나갔다.

정신없이 한 식경을 이동한 후에 그는 마침내 조선군의 후미 근처로 갈 수 있었다. 대충 봐도 조선군은 대군이었다. 격전은 두 식경 동안 계속되다가 조선군의 퇴각으로 일단락되었다. 천동은 가능한 고니시 군영에서 멀리 벗어난 후에 그곳에서 눈을 붙였다.

동굴집으로 돌아온 천동은 잠들어 있는 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군데군데 눈물딱지가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 한구석이 짠해져 왔다. 한참을 더 바라보던 그는 몸을 뉘었다.

다음 날부터 힘겨운 겨울나기에 나섰다. 여전히 국화 누이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지만, 그녀를 정말 누이로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좀 다른 것 같았다. 불과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깨끗한 옷을 입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그녀가 알던 천동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국화는 자신의 가슴이 주책없이 뛰는 것을 느꼈다.

천동이 먹을 것을 구하려고 겨울 산을 헤매고 다니는 그 시간에 국화는 동굴 안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천동과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얘기를 하면 뭔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전란 중이라서 탁주를 파는 주막도 없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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